북한보건의료네트워크

말라리아는 학질이라 하여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있어 왔던 질병으로 모기에 의해 매개되는 기생충 감염 질환이다. 세계적으로 100여개국 이상에서 토착화된 질환으로 세계 인구의 40%가 말라리아 발생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결핵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으로 꼽히고 있다. 남한의 경우 1959년부터 세계보건기구와 공동으로 말라리아 퇴치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1979년 박멸 선언(malaria-free area)을 하였으며 이후

1980년부터 1992년까지는 해외에서 유입된 말라리아의 보고만 있을 뿐 국내 발생 말라리아 발생 보고는 없었다. 1993년 외국 여행 경험이 없는 휴전선 근무 군인에서 다시 말라리아 발생 보고가 있었으며 1994년에는 동일 지역에서 21명의 환자 발생보고가 있었는데 모두 군인이었다. 그 후 국내 발생 말라리아의 발생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제대군인, 민간인으로 확대되고 지역적 분포도 점차 광범위해졌다.경기도가 대성군과 연천군 샘플 지역에 대해 1996년 말라리아 항체 보유율을 조사함 결과 6%의 양성 반응을 보였으며 같은 지역 거주민의 현미경 검사 상 원충보유율은 1.6%로 1960년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국내 말라리아 환자 발생은

표 1. 남북한의 말라리아 환자 발생 현황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남한	2	3	25	107	356	1,724	3,932	3,621	4,142	2,556
북한							2,100	95,960	204,428	295,570

2001년 가뭄에 의한 매개 모기의 감소, 적극적인 말라리아 관리사업, 군대의 예방적 화학요법의 확대, 대북 말라리아 방역지원사업 등의 노력에 의해 2001년 이후에는 대폭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에서도 1950-60년대 DDT의 살포와 모기장의 보급 등 예방 사업에 힘써 1970년 초 말라리아가 박멸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리고 과거에

파마퀸(pamaquine)이라는 약물로 집단예방 사업을 시행한 적도 있다. 남한에서처럼 북한에서도 말라리아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1990년대 중반 다시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경우 말라리아를 진단할 수 있는 기구 자체도 부족한 실정이므로 발생률을 추산해 내는 것도 쉽지 않다. 1998년도에 강원도, 황해남도, 개성 등지에서 2천100건이 발생했으나 1999년도에는 황해북도, 평안남, 북도까지 확산되어 남부 6개 도에서 약 100,000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여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으며 2000년도에는 약 20만 명, 2001년도에는 더욱 증가한 약 30만 명의 환자가 보고 되었다고 한다(<표 1>).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1천만 명이상의 북한 주민이 말라리아 감염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말라리아 발생 통계가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의 경우 진단 장비의 부족으로 일차적인 진단은 임상 증상에 근거하여 내려지고 있다. 말라리아가 대유행함에 따라 의료진들이 발열을 증상으로 병원이나 진료소를 방문하는 환자를 말라리아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임상적으로 말라리아를 생각하고 혈액 검사를 시행하여 음성이 나온 경우도 그냥 말라리아로 보고 되는 보고 체계상의 문제도 통계상의 오류에 기여하고 있다. 혈액 검사의 경우도 실제보다 과진단되고 있다는 세계보건기구 관계자의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2002년 상반기 대중화학예방요법을 시행한 후 환자군과 동시에 혈액 검사를 시행한 대조군에서 예상보다 적게 말라리아 양성이 확인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제 말라리아 환자 수는 보고 되는 수치의 50-60%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현재 한반도에 유행하고 있는 삼일열 말라리아(Plasmodium vivax)는 다행히 치명적이지 않아 사망사례는 보고 된 바 없지만 신체 활동에 영향을 미치므로 농번기 시즌에는 심각한 노동력 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 말라리아 발생이 어린이보다는 어른, 여자보다는 남자에서의 발생률이 더 높으며 남한의 경우 약 40%가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북한의 경우는 65%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표 2. 북한 어린이 말라리아 발생 현황

연도

총

15세 미만 어린이

성인

0-4

5-9

10-14

총

%

총

%

2000년

204,428

126

5,354

6,799

12,279

6.1

192,149

93.9

2001년

295,570

58

1,988

2,047

4,093

1.4

291,477

98.6

2002년 7월현재

99,806

641

1,883

3,384

5,908

5.9

93,898

94.6

15세 미만 어린이의 말라리아 발생 현황은 <표 2>와 같다. 2000년도에는 말라리아 환자 총 204,428명 중 6.1%인 12,279명이 15세 미만이었으며 2001년에는 1.4%, 2002년에는 5.9%가 10세 미만이었다. 대략 1-6%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경우는 2001년도 환자 총 2,556명 중에서 0-4세 5명, 5-9세 15명, 10-14세 34명 등 모두 54명으로 15세 미만의 경우가 전체의 2%였다.

북한의 말라리아도 남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일열 말라리아로 북한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6개 도의 논과 하천 주변 평야 지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휴전선 인근 경기 북부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북한에서의 말라리아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남쪽에서 분리되는 원충의 염기서열이 동아시아 그룹으로 분류되는 중국과 북한 유래종과 유사하며 임상적 특징, 역학적 특징 등을 고려할 때 70년대까지 국내에서 발생하던 종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70년대 유행하던 말라리아 원충이 휴전선 비무장지대 주변에 잠복해 있다가 말라리아 방역 사업의 중단,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에 의해 다시 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라졌던 말라리아가 다시 발생한 것이 북한이 생물학 무기로 개발한 것이 아니냐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한반도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라리아는 별로 치명적이기도 않아 두창, 페스트, 탄저병처럼 생물학전 무기로 적합하지도 않다.

북한에서 다시 말라리아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확인이 어렵지만 북한의 공식적인 보고에서는 1998년 처음으로 2,100명의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수치는 같은 해 남한에서의 말라리아 환자 3,900여명보다 적은 수치이며, 환경 변화 및 방역체계의 취약성 등으로 인해 말라리아 확산 가능성이 남쪽보다 훨씬 더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비무장 지대 남쪽 지역에서 먼저 말라리아가 발생하고 이것이 북쪽으로도 전파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993년 이전에 북한에서 먼저 말라리아가 발생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환자 발생이 많았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의 취약성으로 인해 1998년 이후 말라리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면 북한에서의 처음 발생 시점이 1998년보다 아주 이르지는 않으며 1-2년 정도 먼저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995-7년 시기는 북한에서도 자연재해, 식량 부족 등 사회적 위기가 가장 극에 달했던 시기로 말라리아 진단 및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1998년에서야 비로서 보건의료 분야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발생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1995-96년의 대홍수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의 서식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 첫 번째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는 Anophelesis sinensis 라는 종으로 이 모기들은 주로 평야나 낮은 구릉에 있는 논에서 번식한다. 논농사에 살충제를 적게 쓰고 논이 침수되는 등의 번화가 모기 번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2002년 7월 1일부터 8월3일까지 세계보건기구의 곤충학자들이 북한에서 현장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모든 조사 지역에서 Anophelesis sinensis가 말라리아를 옮기는 주요한 매개체였으며 실내와 실외에서 이 모기에 물리는 빈도는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Anophelesis sinensis는 중국에도 널리 퍼져 있는 모기의 종류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이 모기들은 주로 동물에게서 영양 공급을 받기 때문에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옮기는 강력한 매개체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으나 모기들의 수가 아주 많이 증가하고 영양을 공급해 줄 가축이 감소하는 경우 사람에게 말라리아 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북한에서의 말라리아 대유행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사에서는 Anophelesis sinensis 외에 Anophelesis anthropophagus도 발견되었다. 수는 극히 적었으나 실내에서 사람을 무는 빈도가 실외보다 훨씬 높은 양상을 보여 말라리아 전염에서 이 모기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더 많은 조사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서는 매개 역할을 하는 모기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기들을 죽이기 위한 살충제의 사용과 모기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조치, 즉 모기장과 같은 방법은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예방 수단의 하나이다.

삼일열 말라리아의 치료를 위해서는 보통 클로로퀸(chloroquine)을 3일간 복용한 후 재발 방지를 위해 프리마퀸(primaquine)을 14일간 더 복용해야 한다. 프리마퀸을 복용하지 않으면 모기를 매개로 다른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전파할 수 있다. 말라리아의 전파는 7월 중순에서 9월 말까지가 가장 활발하다. 1999년에는 북한에 프리마퀸이 보급되지 않았으므로 이 당시 말라리아 걸린 환자들의 상당수가 보균 상태로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전파하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이전 북한에서 말라리아의 진단은 주로 임상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미경과 재료의 부족으로 검사실 진단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의사들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말라리아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진단 자체가 지연되곤 하였다.

말라리아가 확산되자 북한의 보건 당국은 1999년 세계보건기구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러한 북한의 요청에 응해 북한 말라리아 퇴치 계획(malaria control program)을 수립하였는데 이것은 세계보건기구, 세계은행, 유엔아동기금, 유엔개발계획 등이 199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전세계적인 Global Roll Back(GRB)의 일부분으로 진행되었다.세계보건기구에서는 2000년 4월에 20만 명을 치료할 수 있는 프리마퀸을 제공하였는데 감염원를 차단하여 전파를 감소시키기 위해 1999년도에 클로로퀸을 투여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보급하였다. 그리고 10만 명분의 클로로퀸과 진단에 필요한 현미경, 검사 물품 등을 지원하였다.

세계보건기구는 북한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남한 정부에도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정부는 2001년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항말라리아제, 현미경, 슬라이드, 염색시약 등의 진단장비, 모기장, 모기 살충제 등 46만 달러 상당의 현물을 지원하였고 2002년에도 35만 명분의 치료 약품과 검사 및 방역 장비, 모기장 등 65만 달러 상당의 현물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남측의 지원이 아직까지는 세계보건기구를 통하는 간접지원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남북간 직접적인 협의를 통해 공동 방역 사업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지원은 곧바로 남한의 말라리아 퇴치 사업과도 연관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말라리아 박멸 선언이 가능해지려면 남북한 공동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