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사대담 71/북한의 의료복지/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제2인민병원 간호사 출신 백.경.미]

출처 : 평화문제연구소 (www.ipa.re.kr)

“난방 안돼 석유곤로 피우고 수술”

이달의 대담자는 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제2인민병원에서 간호사(편집자 주: 북한에서 간호사의 공식호칭은 간호원’이므로 본문에서는 이에 따른다)로 근무했던 백경미(여·가명)씨다. 최근 북한에서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병원에 전기가 끊기고 환자들에게 영양공급마저 중단되는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의료부문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무상치료제를 자랑해왔던 북한의 의료복지 실태를 알아본다.

<대담/한석현/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원>

■ 근무했던 길주제2인민병원은 어떤 곳인가
길주제2인민병원(이하 ‘2병원’)이 원래는 길주팔프공장 직원들과 가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팔프공장 병원이었다. 그런데 길주군이 24개 리(편집자 주: 최신 북한자료에 따르면 현재 길주군 행정구역은 1읍, 5구, 22리이다)로 되어 있는데 군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니까 7개 리를 너희가 관할해라 하고 우리공장 병원에 떠넘겨 버렸다. 2병원은 군에서 두 번째로 큰 병원으로 영북구에 위치해 있다. 어느 군이나 규모가 제일 큰 병원은 군병원으로 이것을 제1인민병원이라고 하는데, 길주제1인민병원(이하 1병원)은 길주읍에 있다. 1병원과 2병원은 차이가 큰데 1병원이 2병원보다 기능면에서 더 많고 의료일꾼들도 2병원보다 기술이 뛰어나다. 병상수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 2병원이 1백∼1백10개 정도고 1병원은 3백개가 넘는다. 그리고 수술장도 2병원은 외과수술장밖에 없는데 1병원은 외과수술장 외에 산부인과 수술장이 따로 있다. 그래서 2병원에서는 산부인과 수술을 못하고 1병원에 보낸다. 이렇게 1병원과 2병원의 차이가 많기 때문에 군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모두 1병원에서 담당한다.

■간호원이 되기 위한 조건과 교육기관은
간호원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사회에서 경험을 쌓아야 된다. 그리고 나서 추천을 받아야 입학시험을 볼 수 있는데, 추천도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고 ‘빽’이 있어야 한다. 입학시험에 3백명 정도가 지원하고 그 중에 절반이나 그 이하가 뽑힌다. 시험과목은 국어, 수학, 로어, 혁명역사, 화학, 물리 등 여섯 과목이다. 북한에는 도마다 한 개의 간호원학교가 있다. 함경북도에는 온성군 종성구에 함경북도간호원학교가 있는데 원래는 샛별군에 있다가 옮겨진 것이다. 간호원학교의 교육과정은 2년이고 이론과 실습을 같이 배운다. 교육과목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이다. 그리고 실습은 집에서 다닐 수 있는 병원에서 한다.

■졸업 후 직장배치는 어떻게 되나
일단은 자기가 가고 싶은 병원에 간다. 그렇다고 원하는 병원에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가고 싶은 병원에 자리가 있어야 갈 수 있다. 그리고 1병원 같이 좋은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빽’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2병원에서 오라고 했는데 갑자기 원장이 뭘 받아먹기 위해서 자리가 없다고 했다. 마침 외과과장이 어머니 고향 친구였는데, 자리가 있는데도 원장이 먹자고 그러는 거다 그러니 쌀이나 3∼4KG 주라고 했다. 일반노동자에 비해 근무조건이 좋고 장래를 생각해서 없는 살림에 쌀 5KG하고 술 5ℓ를 주고 다음날부터 출근을 했다. 북한에서는 돈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처럼 물품을 많이 준다.

■간호원들의 근무여건은
외과와 내과같이 큰 과는 간호원이 두 명있었고 소아과에는 간호원이 한 명있었다. 과에 간호원 둘이면 둘이 알아서 교대를 해야 한다. 혼자 아침, 저녁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람이 자지 못하고 일하니까 죽을 지경이다. 중환자가 왔을 때는 그 강도가 더 하다. 의사는 한 과에 4명 정도 되니까 돌아가면서 일 할 수 있지만 간호원은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무리하게 근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병원은 한 개 과에 보통 간호원이 5∼6명 정도 되니까 하루에 3교대로 일한다.

■간호원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일이 힘들지 않으면 좋은 직장이다. 길주팔프공장의 우리 또래 아가씨들은 공장이 멈춰 서니까 매일 20리 길을 걸어서 농촌에 노력동원을 나간다. 흙을 파다가 논밭에 뿌려주는 땅파기 작업을 한다. 비료가 없으니까 산성화된 논밭의 흙갈이를 해주는 것이다. 흙을 파다가 깔려 죽는 사람이나 다치는 사람도 많이 생긴다. 그에 비하면 간호원은 편한 직업이다. 그래서 간호원이라는 직업이 좋다는 것이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간호원은 약초채취를 위해 나가는 동원밖에 없다. 보건부문에 들어오기 전에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농촌동원을 나갔는데 보건부문에 들어와서는 그런 노력동원을 나가본 적이 없다.

■간호원 1인당 몇 명의 환자를 담당하나
환자 몇 명을 담당한다는 것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환자가 한 명 있으면 한 명 보는 거고 열 명 있으면 열 명 보는 식으로 입원한 환자를 다 본다. 겨울 같은 경우는 병원에 난방도 안 되고 밥도 안 주니까 환자가 서너 명 정도밖에 없다.

■병원에서 입원환자들에게 식사제공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밥을 안준 지 오래됐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은 매끼마다 집에서 밥을 가져 와야 한다. 예전에는 밥을 줬는데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가 나빠지면서 쌀 자체가 없으니까 병원에 있던 식당도 없어졌다. 그래서 간호원이나 의사 등 병원직원들도 배가 고프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온다.

■병원 직원들의 배급과 임금 조건은 좋은 편인가
배급도 거의 안 되고 있다. 원래 배급은 출근 일수에 맞게 병원에서 배급표를 주면 배급소에서 쌀을 타게 되어 있는 것인데 배급소에 쌀이 없으니까 공장별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된다. 병원도 공장에 있는 다른 직장들과 마찬가지니까 공장에서 강냉이를 가져다가 몇 달에 한 번씩 나눠준다. 이렇게 배급만 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의사들의 경우에는 산모들이 해산하면 나오는 태반을 가져다가 몰래 팔기도 한다. 태반은 원래 ‘생물원작업소’라는 곳에서 약물 추출용으로 쓰이는데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태반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강냉이나 쌀을 받고 파는 것이다. 그러다 적발되면 1년에 두 번씩 군의 모든 보건일꾼들이 다 모이는 ‘6·24검열’(보건부문에 대한 김일성 주석의 교시)이라고 하는 총화에서 자아비판으로 망신을 준다. 심하면 3개월 무보수나 의사자격을 박탈당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단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암거래를 한다.

■환자치료에 약초를 많이 이용한다고 들었다. 어떻게 조달하는가
약초재배는 병원사람들이 전부 한다. 병원마다 약초밭을 떠맡은 게 있다. 30∼40리 떨어진 곳에 밭이 있는데 주로 일요일에 약초밭을 조성하러 점심도시락을 싸 가지고 왕복 60리 길을 걸어서 갔다 오는 것이다. 그런데 땅도 척박하고 외진 곳에 있다보니 약초를 심어놓고 가을쯤 캐려고 보면 절반 이상 도둑질 당해서 거의 없다. 그러니 괜한 고생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 지시로 당에서 병원마다 약초밭을 조성해서 필요한 약재를 만들어 공급하라고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봄, 가을에 한 번씩 약초를 캐는데,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약초를 좀 캐오라고 하면 그 환자는 죽든지 살든지 간에 약초를 캐거나 사서 의사한테 가지고 와야 한다. 의사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해서 할당된 약초과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하지만 간호원들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 직접 약초를 캐러 다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자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기간 약초를 캐러 다니기가 힘들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쌀이나 식량을 가져다가 장마당에서 약초로 바꿔서 할당된 약초과제를 채운다.

■의약품 공급 상황은 어떠한가
수술을 한 환자에게는 수술한 당일부터 이틀까지는 항생제를 무상으로 준다. 대수술을 한 경우는 열흘이나 한 달 이상 항생제를 써야하는데 항생제 한 대 값이 우리 한 달 노임과 맞먹기 때문에 계속 항생제를 환자들에게 공급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과별로 하루에 항생제가 몇 병 안나오기 때문에 환자끼리도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서 의사한테 잘 보이기 위해 뇌물을 주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의약품이 빼돌릴 만큼 많지도 않지만 의사들은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주고 물자를 받기 위해 의약품을 빼돌리는 일이 허다하다. 의약품은 국산을 주로 쓰는데 중국제를 쓰기도 한다. 중국제는 부작용 등 의료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국산을 선호한다. 의약품이 부족해서 환자들에게 충분히 공급을 못해주니까 의사들이 처방전을 떼어주면 환자들이 장마당에서 약을 직접 사온다. 그런데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약은 가짜가 많다. 순천제약공장에 사람들이 페니실린 전 단계의 가루에다가 약병하고 상표까지 빼내서 장마당에 유통을 시키는데, 이런 약은 효과도 없고 부작용도 심하다. 이런걸 환자들이 모르고 사오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환자들에게 쓸 약이 모자라도 전쟁물자는 꼭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병원마다 전쟁물자를 보관하는 약국창고가 따로 있다. 전쟁물자는 도에서 매달마다 검열을 내려오기 때문에 관리가 철저하다. 거기에는 페니실린과 같은 질 좋은 의약품이 있는데 3년에 한 번씩 교체되는 약이 환자들에게 공급된다.

■병원에는 전력공급이 잘되고 있나
전력공급 상황은 말하기 힘들 만큼 비참한 실정이다. 전력공급이 안돼 보일러가 멈춰 선지 오래다. 땔감도 없고 석탄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니 여름에 냉방은 물론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실정이다. 특히 수술장은 겨울에 바람도 많이 들어오고 넓기 때문에 매우 춥다. 그래서 전기기관차에서 쓰는 히터를 구해서 난방하는데 히터가 열흘을 못 가고 줄이 끊어져 버린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수술장에 석유곤로를 들여놓고 불을 지핀다. 수술장에는 무균이 생명인데 그을음 나는 석유곤로를 켜놓고 수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는 들어와도 언제 끊길지 모른다. 수술을 하다가도 전기가 나가 수술을 중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수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병원에서는 길주팔프공장에서 난방용으로 석탄을 받아오게 되어 있는데, 팔프공장을 돌릴 석탄도 없으니까 병원 역시 석탄공급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병원에 공급된 석탄을 병원직원들이 집으로 가져간다고 해서 석탄공급을 안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