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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 인권, 진보와 보수를 넘어]1부 (1) 지금 황해도는…
작성자 경향신문 (2012.09.28) 조회 3252
[북한 인권, 진보와 보수를 넘어]1부 (1) 지금 황해도는…특별취재팀

ㆍ수탈·불평등이 만든 기근에 죽음·범죄가 판치는 정글로 변해

그들은 현상으로서의 인간으로 존재했다.

길고 잔인한 기근을 견디는 동안 불가피하게 양산된 죽음들과 폭력, 범죄에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생존과 돈에만 눈을 번뜩였
고, 내일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타인을 믿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
다는 본능이 눈빛에 서려 있었다. 종교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했다. 그러나 자녀 이야기를 할 때는 종종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중
국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그들은 인간성(humanity)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직전에 놓인, ‘분기점’의 사람들이었다. 그
들에게 인권은 사치였다.

북한 일부지역이 “2000년 이후 최악의 기근과 아사”를 맞고 있다는 것이 경향신문 취재팀이 중국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의 공통
적인 증언이었다.



수해 피해를 입은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지난 8월4일 주민들이 북한 적십자회에서 나눠주는 긴급구호물품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
다. | AP연합뉴스

▲ 북한 최대 곡창지대임에도 곳곳에서 아사자 속출
최근의 대기근 사태는 자연재해가 원인이 아니라
권력계층의 수탈로 인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상

북한 최대의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황해도의 상황은 실제 더욱 심각했다. 지난해 홍수와 올
해 초 가뭄으로 흉작이 들었다. 황해도 출신의 한 농촌 간부는 자신의 마을 60가구 중에서 올해 굶어죽은 사람이 10%가 될 것이라
고 계산했다. 춘궁기에 나는 작물들의 작황도 좋지 않아 특히 4~5월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많
이 죽었을 때, 하루에 다섯 가구, 여섯 가구씩 죽는 것을 그냥 지켜본 적도 있다”고 그가 말했다.

황해남도의 한 노동당 중견 간부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근 상황을 전달했다. “보통 황해남도의 사망률은 1000명당 한 명꼴입니
다. 그런데 지난 4월 현재 그 30배가 넘어섰습니다. 황해남도 인구가 200만명 정도니까 6만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봅니다.” 이
지역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했던 한 인부는 “올해 아사자가 급속히 늘어 시체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어 시체 10구가 모이
면 그때 모아서 매장을 한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시내 인근 얕은 산에 봉분 없이 묘를 만들었다. 제공되는 술 반 병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아사는 매우 긴 시간 동안 고통을 수반하는 죽음이다. 수십일간의 식량 부족을 견디는 사람들 중엔 아사를 피하기 위해 자살을 택
하는 사람도 있었다. 외화벌이를 위해 지난달 중국으로 건너온 황해도 농촌 간부는 같은 이(里)에 사는 이웃 일가족의 자살 이야
기를 전해줬다. 작년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을 드러냈던 지난 4월 어느 날, 이웃집 철이 엄마(가명)가 그에게 옥수수 3㎏을
꾼 뒤 쥐약을 풀어서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나눠 먹고 죽은 것이다. 양식을 빌려준 것이 오히려 죄가 되어서 간부는 그 뒤 한동안
안전부에 불려다녔다.

1990년대 후반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 행군’ 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던 황해도 곡창지대에서 올해 아사자가 늘고
있다. 이 사태는 자연재해로 인한 일시적 식량난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북한주민 20여명을 인터뷰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수
년간 축적된 지력·종자 악화와 비료·농약·전기 등의 부족으로 해마다 쌀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북 정부는 지난해의 수해와 올
해 봄 가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도미와 군대미를 여느 해와 같이 정량 공출해갔다. 전국을 먹여살리던 대표적 곡창지대의 기아
사태는 권력에 의한 수탈과 오랫동안 축적된 사회 불평등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기근이었다.

아시아의 진보적 경제학자로 알려진 아마티아 센은 기근이 자연재앙의 문제이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독재 체제
에선 위기상황에서도 정권 연장을 최우선 목적으로 예산이 배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쉽게 굶어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센은 절대적 기아나 식량난은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다고 주장한다.

15년간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 주민들을 만나온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 또한 “올해 북한 농촌에 닥친 기근은 자
연재해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간 무리하며 유지해 온 북한식 사회주의의 파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현재 시스템 피
로가 누적돼 제일 중요한 곡창지대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며 “정권이 많이 약체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
다. 그는 “내년은 올해보다 (기근이) 더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간부들은 국제사회에 지원을 당장 요청해야 한다”고 지적
했다.

기근 자체보다도 그로 인해 발생되는 폭력과 범죄, 사회질서 붕괴, 극단적 개인주의가 지금 북한 사회를 더 병들게 하고 그렇잖아
도 파탄난 인권을 벼랑으로 몰고 있었다. 강도와 살인 등 흉악범죄가 많아졌다. 황해도 노동당 중견간부는 살고 있는 마을에서 옥
수수를 훔치면서 노인을 죽이고 달아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도적이 너무 많아 집을 잠그고도 마음을 못 놓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도 전했다. 아예 벽을 부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최근 간부들의 집이 더 많이 털리고 있으며 집을 지
키고 있다가 칼침을 맞아 사망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황해도의 한 50대 의료관계자에 따르면 “죽은 사람이 머저리다. 강도질을
하든 살인질을 하든 사는 사람이 영웅”이라는 생각이 공공연히 퍼져 있다고 한다.

비경제활동 인구인 노인에 대한 천대도 심해졌다. 황해도 한 주민은 “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자식들이 많아졌다”며 “밥만 축
내니 제 부모를 짐승처럼 대하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최근 이 지역에서 자녀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황해도의 50대 중견 간부는 “먹고살기 힘들어 사람들이 다 거칠어졌다”며 “사회질서, 예의 이런
게 다 없어지고 지금은 오로지 약육강식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있었던 ‘사람고기’ 유통 및 섭취 사건이 최근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평안북도
에 사는 50대 남성은 “최근 몇 달간 굶은 집에서 갑자기 고기 냄새가 나 안전부가 조사를 나가보니 아우가 죽은 형을 먹은 것으
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황해도 농촌 간부에 따르면 11명의 사람고기를 돼지고기처럼 유통시킨 사람이 지난 4월 총살됐다. 김씨
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난생 처음”이라고 전했다.

기근이 장기화되면 “가족이나 그와 유사한 작은 단위의 인간관계마저 붕괴되고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심이
증대된다”고 정병호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밝혔다. 그러나 그는 “사람고기 유통과 같은 문제는 극한 상황에서의 일탈
적 현상”이라며 “북한 기근의 진짜 문제는 훨씬 지역적 편차가 크고, 국지적으로 심화된 상태로 퍼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
다. 그는 또 “굶주림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오래 괴롭히는 것은 폭넓은 삶의 방식의 피폐와 같은 사회문화적 문제”라고 설명
했다. 실제 인터뷰를 한 대다수의 황해도와 평안도 주민들은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국가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모습이
었다. 전화 통화를 통해 인터뷰를 한 황해도 30대 상인은 최근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회 치안이 나빠져 도둑들에
게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잠시 중국에 머물며 막일을 하는 황해도 의료관계자는 “국가는 도적놈”이
라며 열을 냈다. 국가 방침이 내려와도 이젠 사람들이 콧방귀만 뀐다고도 했다. 불평등에 대한 불만도 쌓여 있었다. “평양 사람
들은 외부에서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만난 이들 중 대다수는 ‘인권’이라는 말의 뜻을 잘 몰랐다. 함경북도 주민 한 명은 “조선에서는 ‘인권’이라는 말 대
신 ‘자유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자유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얘기했다. 그들에게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연방 가슴을 치던 한 황해도 주민의 말이 뇌리에 자꾸 남는다. “예의 바르던 우리 민족이 이제는 원시시대보다 더한 상태가 됐습
니다. 가슴이 터져서 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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