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링거액 만들 설비를 주자
초기 비용 들지만 약 제공보다 효과 커
어린이 폐렴 등 막게 '영양센터' 건립도


"그동안 우리가 결핵 치료제 등 각종 의약품을 주거나 의료지원을 해주었지만 무한정 이렇게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듭
니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17차례에 걸쳐 비타민 등 의약품과 의약품 생산설비를 북한에 지원한 '어린이 의약품지원본부' 김진숙 사무
국장의 언급이다.

이는 우리의 기존 대북 보건.의료 분야의 지원방식에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시급성이 요구된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원 양상을 보면 중복과 편중의 문제가 생겨 지원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강영식 사무국장은 "국내 민간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북한과 접촉해 지원을 하는 바람에 구충제.결핵약 등
특정 약품이 집중적으로 지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원품의 전달장소가 평양으로 국한되고 있는 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는 지원품을 지방도시로 전달하겠다는 우리의 요청을 북한이 거부하는 데 따른 것으로, 앞으로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와 보건전문가들은 우리가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방안을 시급히 마련한 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원의 효율
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 상임이사는 "현재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의 북부와 동부 지역의 어린이.임산수유부 등을 집중지원의 대
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전문가들은 왕진가방 보내기 운동, 비타민 및 수액제 공장과 어린이 영
양증진센터 건립 등을 현실적인 지원방안으로 제시한다.

◇왕진가방 보내기 운동=지난 3월 평양의학병원에선 서울대병원팀이 심장병 환자 11명을 수술했다. 여기에 참여했던 한 의사는 "북
측 의사들은 수술실에서는 물론 틈나는 대로 의학책을 들고 와 평소에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하는 등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안과 전문의 공영태 박사도 "약과 장비만 있으면 북한 의사들은 얼마든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실력
이 있다"면서 "하지만 기초 진료기구들이 부족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점에 착안, 전문가들은 북한에 '왕진가방 보내기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박진원 사무국장은 "북한에는 1명의 의사가 100명의 주민을 담당하도록 돼 있다"며 "청진기.항생제.소화제 등
기초 치료기구를 담은 왕진가방(1개에 3만~4만원)을 북측 의사들에게 제공한다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타민 및 수액제 공장 설립=지난해 북한어린이 사망원인의 1, 2위는 호흡기질환과 설사였다. 이런 질병들의 가장 큰 원인은 영양
실조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지난해 하루에 비타민 20만정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어준 것은 이 때문이다.

의약품 지원보다 생산설비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북측도 생산설비 지원을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은 지난해 4월부터 한국기아대책기구.대한의사협회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평양 낙랑구역 정성제약공장에 연간 500만
병 생산 규모의 수액제 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설비지원은 초기 자본 투입에 대한 부담은 크지만 일단 설비가 완공되면 그 후엔 원료의약품만 지원하면 된다.

따라서 일정 시점 이후에는 같은 비용으로 완제 의약품을 지원할 때보다 6~7배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또 북측의 유휴 인력을
활용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남북 간 상호교류가 수반된다는 이점도 있다.

"지금까지 대북 보건.의료 지원이 의약품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생산설비 설립 지원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 의견이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김진숙 사무국장은 "5000원이면 북한 어린이 한명에게 1년간 비타민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
했다.

◇어린이 영양증진센터 건립=이 방안은 북한 어린이들이 폐렴과 설사 같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사전 예방을 하는 것이 더욱 바람
직하다는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이 방안은 민간단체도 추진하되 정부가 나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장남수 이화여대 교수는 "이 사안은 북한당국과 본격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면서 "정부 내에 '북한 어린이 응급영양지원 전담부
서'를 설립하고 영양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구성해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별취재팀=통일문화연구소 이동현 전문위원, 정창현.고수석.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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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4 18:23 입력 / 2004.05.06 10:0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