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어깨동무’, 북녘 농촌에 병원 짓고 평화 심고

24일 오전10시30분, 평양 외곽의 강남군 장교리. 들녁에는 볏단이 여기저기 남아 있고 마을 어귀
에는 염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서 있었다. 전형적인 우리네 농촌 풍경이다. 준공 행사를 기다리
는 ‘장교리 인민병원’ 앞길은 포장 안 된 흙길이었지만, 먼지 하나 없이 말끔했다.
시골 아낙네들의 고운 한복차림과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행사를 앞둔 주민들의 긴장된 모습과 대
조적이었다. 아이들은 탁아소, 유치원과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이어선지 눈에 띄지 않았다.

병원은 붉은벽돌의 작은 단층 건물이었지만 마을과 잘 어울렸다. 병원은 산부인과, 소아과, 내
과, 치과 등이 있고, 분만실, 약제실, 입원실, 샤워실까지 고루 갖춰져 있다. 한마디로 남쪽의
보건소나 모자보건센터 개념으로 지어졌다. 이 병원은 당초 장교리의 9백 가구, 3800여 주민을
위한 병원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의사들은 “좋은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있는 걸로 소문이 나면
인근의 당곡리, 룡교리 주민들까지 몰려들 텐데...”라며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이번에 병원 바로 옆에 함께 지은 두유공장도 이들 3개 리의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
을 정도로 설계했다. 아무튼 의사들의 걱정에는 북한의 열악한 의료 현실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북한의 의료 현실이 그러하기에 ‘장교리 인민병원’ 설립은 여러모로 더욱 뜻깊은 일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평양과 같은 큰 도시가 아니라 농촌지역에 리 단위의 인
민병원을 처음 세운 것은, 남북 협력사업의 새로운 장을 연 의미가 있다.

남과 북의 의료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을 다해 세운 ‘장교리 인민병원‘은 북녘의 의료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뜻있는 모델이자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병원 운영도
남과 북이 지혜를 짜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따라서 한쪽에서 우려하는 ’모니터링‘ 문제도 자연
스레 해결될 것이다. 병원 설계를 자원한 건축가 황영현씨는 “이 건물과 똑같은 인민병원이 북
한 곳곳에 세워지면 얼마나 좋겠느냐. 누가 설계도면을 원하면 기꺼이 도와 줄 수 있다”고 말했
다.

‘어린이어깨동무’ 평양 장교리에 인민병원 산모·태아 보살피게 돼
북녘 어린이 돕는 것은 그들과 함께 살게 될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돕는 투자

우리 연배는 너나없이 어린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웬만큼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도 못내 애태
우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 피부 색깔과 국경을 넘어 의료 지원을 해
준 외국 병원의 이름도 함께. 어린이어깨동무는 지난날 우리처럼 어려움에 처한 북녘 어린이들
을 위해 의약품과 식량, 학용품 등을 보내다,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학용품 공장과 어린이 병
원 짓기에 나섰다.

2004년에 개원한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도
록 북녘 어린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병원이라면, ’장교리 인민병원‘은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 있도록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보살피고 치료하는 데 역점을 두는 병원이 될 것이다.

다 알다시피 북녘 어린이를 돕는 것은 언젠가 그들과 더불어 살게 될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돕
는 투자이자 한반도의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준비이다. 나는 이 병원 설립을 위한 논의 단계부
터 참여했다. 최근에도 장비 설치와 의료기술 이전을 위해 몇 차례 병원을 방문했다.

지난번에는 그곳 ‘보건일꾼’(의사, 간호원, 조산원)들과 엿새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어려운 여
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열성과 진지함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공사를 맡은 ‘건
설사업소’ 노동자들도 공사장 인근에서 기숙을 하며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다. 남쪽에서 올라간
건축설계사나 현장소장 등 건축기술자들도 어려운 여건에서 헌신적으로 일해 주었다.

이제 이 병원이 모델이 되어 북녘 곳곳에 비슷한 의료기관이 세워지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다
같이 건강하게 자라 정겹게 어깨동무하는 날이 앞당겨지리라는 흐뭇함이 준공식 내내 나를 사로
잡았다.

황상익/서울의대 교수 <한겨레신문 2006/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