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보건의료네트워크

1980년대 후반 북한의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전반적인 불자 부족은 보건의료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95년 대홍수 이후 북한은 엄청난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으나 독자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주민들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장애에 시달려야 했고 부실해진 의료서비스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부정적 영향은 가장 취약한 어린이들에게 미치게 된다.

북한에서 어린이에 해당하는 15세 미만 연령층이 570만 명 안팎이며 이 중에서 가장 취약한 5세 미만 어린이는 22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 정부가 2001년 국제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세 미만 어린이 사망률이 1993년 1천 명당 27명에서 1999년에는 48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인구 1천 명당 무려 21명의 사망자가 더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1995년 이후 해마다 4만 6천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예전에 비해 더 많이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1세 미만 어린이의 사망률도 1993년 인구 1천 명당 14명에서 1999년 22.5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식량부족으로 인한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장애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1998년 유엔아동기금, 세계식량계획, 유럽연합과 북한 당국이 참여하여 시행한 1차 영양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어린이의 15.6%가 급성영양장애, 62.3%가 만성영양장애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중증 영양장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린이들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00년에 북한이 독자적으로 조사 발표한 어린이 영양상태에서는 사정이 조금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영양장애는 심각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2002년도 후반기에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2차 영양조사가 진행되어 분석과정에 있다. 조만간 결과가 발표되면 그동안의 추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영양장애는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한다. 북한에서 식량 부족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에 단백질, 칼로리 부족으로 인해 온 몸이 말랐으나 복수로 인해 배가 툭 튀어나온 어린이들이 자주 목격되었고 비타민 A 부족에 의한 각막염과 실명, 비타민 C 부족에 의한 괴혈병, 비타민 D 부족에 의한 골격이상 등도 자주 관찰되었다. 발달상의 문제가 발생하고 면역력의 저하로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지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성장부진으로 인해 체계 조건이 악화되는데 이미 남북간에 신장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식량부족은 산모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새로 태어나는 애기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영양이 부족한 산모에게서 태어나는 신생아는 출생 당시 체중도 작을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 2.5kg 이하인 경우를 저출생체중아라고 하는데 1998년 조사에서 9%, 2000년 조사에서는 6.4%였다고 한다. 저출생체중아는 신생아의 성장 발달 장애나 영아 사망률과도 관계가 있어 세심한 진료가 필요하게 된다. 산모나 수유부 중 30% 이상에서 철분결핍성 빈혈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신생아, 영아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양부족 등으로 임신, 출산 과정에서 합병증이 증가하고 있으나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임신과 관련한 산모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다. 모성사망률이 1990년 출산 10만 건당 70명 정도였으나 1996년에는 110명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1995년 이후 감염성 질환이 크게 증가하였다. 영양부족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홍수에 의한 환경 위생 문제의 발생, 방역 시스템의 파괴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어린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북한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설사병과 호흡기감염증이다. 이 두 가지 감염증은 5세 미만 어린이 사망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다. 1995년 이후 설사병은 30% 정도, 호흡기 감염증은 25% 정도 증가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이로 인한 사망 어린이의 상당수가 항생제나 탈수 방지 등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졌다면 생존할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북한어린이에 대한 예방접종 현실도 악화되고 있다. 어린이 질환 중에는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이 가능한 경우 정규적인 예방접종을 시행하게 된다. 북한에서는 물자부족으로 인해 1990년대 초반부터 예방접종률이 조금씩 감소하다가 1995년 대홍수 이후 몇 년간 50%대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소아마비의 경우 북한에서 1987년 이후 발생 보고가 없다가 1995년 7명, 1996년 6명의 환자가 발생하게 된다. 공식적인 보고가 이 정도이면 실제 발생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생아 파상풍도 이 시기에 발생이 증가한다. 이후 유엔아동기금 등 국제기구의 집중적인 지원에 힘입어 현재는 예방접종률이 80-90%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전에는 비교적 잘 조절되다가 대홍수 이후 급증하고 있는 질환 중에 대표적인 것이 결핵과 말라리아이다. 새로운 결핵 환자 발생은 매년 3-4만 명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핵의 경우 적절한 약물 치료를 시행한다면 90%이상의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나 북한의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약이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어린이들의 결핵실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심각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정도이다. 말라리아는 1998년 2,100명의 환자 발생 보고 후 급증하여 2001년도에는 3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치명적이지 않고 어린이들에게는 전염력이 약하기는 하지만 워낙 확산 속도가 빨라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어린이들의 영양과 건강 문제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8년째 이어지는 국제 사회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어린이들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호전되기도 하였지만 이나마 외부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응급구호 성격의 지원만으로는 해결이 가능하지가 않아 보이며 장기적으로 복구 지원, 재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식량을 포함한 외부 지원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당장 지원이 중단되면 북한 어린이들에게 다시 심각한 위기가 찾아 올 수 있다. 북핵 문제, 퍼주기 논란 등으로 인한 시비가 있으나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은 정치적 공방이나 논란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핵문제 해결의 인질이 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