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장애인 본 적 없으시죠?
장향숙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 방북... 북한 장애인단체와 교류방안 논의
이준호(junolee) 기자



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햇볕정책을 내건 이래 지난 9년간 남북은 분단 이후 가장 활발하게 교류를 해왔다.

98년 10월 27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501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북한 당국과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한 합의서'를 체
결한 뒤 그 해 11월 18일 이산가족, 실향민·취재진 등 826명을 태운 금강호가 처음으로 금강산에 들어갔다.

이 때부터 시작된 방북 행렬은 그해 3317명을 시작으로 매해 큰 폭으로 늘어나다가 지난 해에는 10만 명(10만838명)을 돌파했다(통
일부 통계자료 참조).

몇 년 전만 해도 북한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으면 국가보안법을 떠올리며 움찔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냥 여느 곳에 다녀온 것과 별 차
이가 없게 됐다. 이들에게서 평양의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었다든가 김일성 전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했다든가 하는 말을 듣
는 것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북한 사람 만난 것이 특별할 것 없는 세상, 그러나

북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이제는 일상사다. 한때 북한 사람들에게 빨간 뿔이 달려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게 믿기
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북한 사람들도 특별한 사람이 아닌 요즘이다.

그런데 지난 9년, 아니 지금껏 북한을 다녀온 사람 중에 북한에서 장애인을 만나봤다는 사람이 있었나?

이런 의문을 떠올린 사람도 없겠지만, 설사 의문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연히 북한에서 장애인을 만나본 사람이 있을 거라 여길 것이
다. 어느 사회나 장애인은 있으니까.

그런데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향숙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의 방북 결과 기자회견 자리에서 들은 말에 따르면 지금껏 남쪽 사람
중에 북한에 가서 장애인을 만나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장 회장은 본인이 북한 현지에서 장애인을 만나 본 유일한 남한인일 거라 말했다. 참고로 그는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그곳의 휠체어 장애인과 농아 장애인을 만나보았다.

그렇다면 지금껏 왜, 북한에서 장애인을 만나지 못한 걸까?

2001년에야 조선장애자보호법 제정

남한인이 북한의 거리에서 장애인을 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이 마음놓고 돌아다니기 어려운 현지 여건 때문이다.

장 회장에 따르면 북한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절대 부족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애인이 거리에 나오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 '사
회주의 국가'하면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잘 되어 있을 거라는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북한은 몇 년 전까지도 '장애인'이란 말을 쓰지 않았고 장애인에 관한 별도의 제도도 마련하지 않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장애인이란 명칭이 일반화 돼있지 않아 '불구자' 정도로만 통한다는 것이
장 회장의 전언이다.

그러다 2001년 조선장애자보호법이 제정됐다. 북한도 더는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명분만으로 장애인의 불편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조처로 보인다는 게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북한의 장애인 관련 단체인 '조선장애자보호련맹'의 한 관계자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높다"고 토로하더라고 장 회장은 전했다.

이렇듯 장애인을 위한 기본 편의시설이 절대 부족한 마당에 장애인 체육이란 것은 어쩌면 사치에 불과하다. 장 회장은 "북한이 지금
껏 국제장애인올림픽이나 기타 장애인 대회에 선수를 파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체육이란 것 자체가 생소한 상황에서 선
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동안 북한의 이런 장애인 현황에 대해 남한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 분야에서 남과 북이 교류를 해왔지만
지금껏 장애인 간 교류는 없었다.

체육은 장애인의 삶의 질 높이는 수단

장향숙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 일행이 이번에 북한을 다녀온 것은 그런 점에서 장애인 체육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장 회장 일행은 이번 방북에서 북한의 조선장애자보호련맹과 민족화해협의회 북측본부, 해외동포원호위원회(해외 거주 교민들이 북
한을 돕는 창구 역할을 하는 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 내 장애인 체육 도입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장애인체육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장 회장 일행에게 이른 시일 내에 장애인 체육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 것을
약속하며 구체적으로 이번 6·15 금강산 남북연석회의 자리에 장애인 체육 전담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 회장 일행은 북한측에 올 9월 김천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와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13차 국제장애인올림픽위
원회(IPC) 총회에 북한측 장애인 체육 대표들이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 회장은 15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장애인 체육은 장애인의 치료와 건강증진에 도움이 된다"며 "북한이 장애인체육기구를 만든다
면 북한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장애인들과 교류하는 것이 숙원사업이었는데 이를 이루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이번 방북이) 장애인 역사와 인권 역
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장애인 위해서라도 평창동계올림픽 꼭 개최해야"

이날 기자회견은 오후 3시부터 문화관광부 청사 앞마당에서 열린 '2014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기원 D-50 점등식' 행사 때문에 예정보
다 30분 앞당겨 시작됐다.

장 회장은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자연스레 장애인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된다"며 "꼭 유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힘주
어 말했다.

이 자리에 동석한 최경식 대한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도 "우리가 88년에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장애인올림픽도 함께 치렀는데 이 때
를 기점으로 장애인 복지나 시설 등 여러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며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하면 장애인 체육이 한 단계 더 발
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3시부터 열린 '2014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기원 D-50 점등식' 행사는 한덕수 국무총리, 한승수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
을 비롯한 관계자와 동사모(2014평창동계올림픽 서포터즈) 회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0분가량 성황리에 진행됐다.




2007-05-1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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