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결핵퇴치사업을 위해 17차례 방북했던 인요한(45.미국명 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
원 외국인 진료소장은 19일 "북한에 가보면 따뜻한 정과 가족, 문화가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인 소장은 북한결핵퇴치사업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받아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자로 선정
된 소감을 묻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는 처음"이라며 "나이가 너무 어려서 큰 상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해 했다. 인 소장은 1987~91년 미국 뉴욕의 가톨릭연합병원 수련
의 시절 북한대표부 간부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면서 의료 상담을 해주는 등 일찌감치 '대북
통'이 됐다.

인 소장은 1895년 미국의 남(南) 장로교 소속 초대 선교사로 입국한 유진벨(한국명 배유지)
의 외증손자로서, 유진벨 재단은 유진벨 선교사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1995년 설립됐다.

인 소장은 긴급히 연락해 오는 환자들과 연락을 위해 '삐삐'를 고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다음은 인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북한을 오가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점은.

▲원산 근교의 (결핵)요양소에서 한 할머니를 진료했는데 처음에 일어서지도 못하더라. 1년
뒤 다시 방문해 보니 (유진벨재단이 지원한) 약을 먹고 일어나 체조를 할 정도로 원기왕성한 모
습을 보았다. 당시 할머니는 이제 병이 나아 귀가한다며 1000살까지 산다고 장담했다. 우리 보고
도 당신들도 건강하라고 당부하는 여유까지 보이더라.

--기억에 남는 지원활동은.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한국동포 사업가인 이종희씨가 기억난다. 원산지역 병원에 1억5
천만원 상당의 검진차를 기증한다고 해서 같이 방북했다. 이씨는 북한 의사와 환자들을 모아 놓
고 "먼 길을 돌아와서 여러분에게 준다. 우리가 어려우면 여러분이 와서 도와줄거라 믿는다"고
말했는데 아주 짜릿한 순간이었다. 눈물이 나더라.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미국에게 절실히 다가
오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의사들이 환자에게 살을 떼어준다고 하는데.

▲2도 이상 화상을 입으면 우리 인민은 우리가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살을 떼어주는 경우가
많다. 평안남도 보건국장이 직접 자신의 살을 떼어 환자에게 주는 걸 보았다. 반북인사로 돌아
선 독일인 의사 폴러첸도 똑같이 자신의 살을 떼어줘 북한 당국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북한의 의료 실태는.

▲항상 소모품이 부족하다. 90년대 초 약품도 많이 생산했으나 90년대 중반 큰물(홍수)피해
로 사회 인프라가 무너졌다. 오늘날까지 사회 인프라 자체가 덜 회복됐다. 남한 당국과 비정부기
구(NGO)들이 고기는 많이 줬는데 낚싯대를 주지는 못했다. 이제 남한 기업들이 개성공단을 통해
낚싯대를 줘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결핵사업은.

▲선천.곽산.해주.사리원.원산.함흥.청진.평양 등지에 수술실을 9군데 만들었다. 평양시내 적
십자 분원에 중환자실을 만드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환자 몇명을 치료하는 데 목표를 두
지 않고 의료시설을 갖추도록 돕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지원이 절실한 계층은.

▲고난의 행군 시절에 북한에서는 할머니-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 그리고 어린이 순서로 죽
었다. 그래서 현재 고아가 많다. 운전기사로부터 "좋은 사람이 많이 죽었다"라는 말을 듣고 처음
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식량이 부족할 때 자기의 식량을 남에게 나눠주다 먼저 죽은 주민이 많았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

-- 북한의 의료진 수준은.

▲남한 의료진이 북한에 가서 무언가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르다. 북한에서 수
술장면을 직접 보니 장비만 주면 잘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소모품과 약품, 장비가 필요하다. 미
국의 내시경 전문가가 평양의학대학 병원에서 3일을 가르치니 3주 진도가 나갔다고 하더라. 부원
장도 무언가 배우겠다고 수술방에 들어와 젊은 의사들을 밀쳐 내더라.

-- 미국 국적을 유지하는 이유는.

▲(한참을 생각하다) 많이 고민했다. 15년 전 한국에 다시 들어올 때 미국 국적을 포기하려
고 했다 미국 국적을 가지고 사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으면 북한을 마음대
로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국적을 버리고 사는 방법도 있지만 미국 국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나
을 때도 있다.

--현재 가족상황은.

▲치과의사인 아내(이지나)와 사이에 두 딸(18),(16)과 '늦둥이'로 낳은 아들(6)이 있다.
<연합뉴스 2005년 10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