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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달에 만원은 없어도 살잖아
작성자 서홍관 (2005.10.04) 조회 8017

서 홍관 / 서울 국립암센타 책임의사. 시인

북으로부터 1년 이상 초청장이 오길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다가 전혀 준비도 없는데 느닷없이 초청장이 날아왔다. 1995년부터 북한이 홍수와 기근, 경제난국으로 어린이들이 영양결핍과 전염병, 설사로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1997년 의사, 한의사, 약사, 치과의사등이 모여 어린이들을 이대로 방치해둘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으고,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액수가 적었지만, 의료인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처음에는 꼭 필요한 의약품을 선별해 지원해왔고, 점차 지원의 규모와 범위를 확대하여 제약시설과 의료장비까지 지원해 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단독으로 초청을 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미리 예약되어 있었던 환자분들이었는데 내가 직접 일일이 전화 드리고 사정을 설명하자 모두들 흔쾌히 예약날짜를 변경해주시고 오히려 격려까지 해주셨다.

우리 일행은 모두 9명이었다. 아침 일찍 인천공항을 출발 심양에 도착해 북한의 고려항공에 탑승했다. 평양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얼떨떨했다. 뉴스에서 보았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나던 바로 그 장소에 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마중 나온 참사들과 인사를 하고 북측 상무위원과 만찬을 한 뒤 의약품지원 방향에 관한 논의와 일정에 대해 합의를 했다.

이튿날 우리가 지원할 예정인 철도병원을 방문했다. 병원을 둘러보는데, 수술기구에 녹이 슬어 있었고, 마취기계와 엑스선촬영기는 60년대 장비였다. 최근 10년 이상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1986년에는 팔이 완전히 절단된 환자의 팔의 접합수술에 성공하여 그 여성이 지금도 철도청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외과의사도 만나보았지만, 결국 장비가 노후화되었을 뿐이지 의료 기술 수준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으며 우리가 만난 의사들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결국, 우리 방문단 모두는 이심전심으로 이분들을 도와드리면 일이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1-2년 동안 마취기구와 수술 장비는 물론 검사설비(혈액검사, 소변검사), 엑스선 촬영기, 초음파기구, 내시경기구 전체를 새로 바꿔주고, 먼지가 날리는 페인트도 새로 칠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또한 철도청의 방역소장이 자기들의 방역차량과 소독차를 지원했으면 한다고 찾아 왔다. 우리는 방역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이것도 하기로 결정했다. 철도병원은 10만 명의 철도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용하는 중앙병원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우리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앞으로의 지원방향이었는데 일단 가닥이 잡히니 앞으로 할 일에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 홀가분하기도 했다.

다음은 소년궁전으로 이동했는데 각 방마다 어린이들이 음악, 무용, 미술, 수예, 수영과 컴퓨터를 배우고 있었다. 각 방을 둘러보면서 깜찍한 아이들의 재주에 감탄하고 있었다. 성악을 배우는 방에 갔을 때 7-8명의 소녀들이 남쪽에서 올라 온 우리를 위해 특별히 "동무생각(사우)" 노래를 불러 주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면서 우리들이 한 민족으로 같이 살아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노래가 끝난 뒤 나는 붉어진 눈시울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았다. 나이는 열 세 살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 소녀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남한에서도 9시뉴스에 소개된 그들의 해방(창군) 60년을 기념하는 아리랑축전을 보게 되었다. ‘5월 1일 경기장’은 15만 관중이 들어갈 수 있다는 곳인데, 그들의 현란한 카드섹션(2만 명)과 전체 10만 명이 겹치기 출연하지 않고, 공연한다는 엄청난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전통적인 카드섹션에 최신의 영상기법을 동원하여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기도 하고, 서커스도 동원되고, 전통적인 마스게임과 무용, 성악 등을 총 동원한 그들의 기획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험난했던 시절 독립군들이 산을 넘던 그 구비 구비 비탈길을 자동차 불빛과 카드 섹션으로 연출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그 내용은 일제 강점기의 시련과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이후의 건설과 성장, 통일과 밝은 미래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신의주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통일 열차를 카드섹션으로 보여주었는데 그 웅대한 스케일에 우리 방북단은 압도되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자, 관객들 대부분을 차지한 북한 주민들은 걸어서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자가용이 있을 턱이 없었고 까닭은 모르겠지만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가로등도 하나 없는 깜깜한 평양 시내의 길을 소리하나 내지 않고 따라 걷는 모습에서 이상하게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일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묘향산으로 향했다. 묘향산 가는 길은 도로가 텅 비어버린 듯 차가 적었다. 가다가 청천강을 만났는데 안내하던 참사동무가 청천강 다리 위에서 차를 세워 주었다. 청천강이라니!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있었다고 국사책에서나 보고, 지리부도 책에서나 보던 전설 같은 청천강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반짝이는 물결과 모래톱과 강변의 갈대들을 보다가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안내해주는 참사의 손을 잡으며 "아, 청천강이라니....정말 고맙소." 이렇게 말했다. 맑은 바람과 모래사장, 그리고 가을 햇살에 반짝이던 청천강의 갈대꽃은 내 생애에 결코 잊지 못하리..........

더 가다가 영변 안내판이 나타나길래 운전기사에게 이 근처에 김소월 시에 나오는 약산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저게 약산이라고 가리킨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누구 헤어질 일 있는 사람은 내년 봄에 진달래 한창 필 때 다시 와서 진달래꽃 따가야 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다보니 묘향산에 도착했다. 묘향산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녹음이 짙푸르다.

참사들이 연락한대로 묘향산 계곡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묘향산 호텔의 여직원 두 사람이 미리 음식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나온 여성 동무들이 얼마나 상냥하고 예쁜지 남남북녀라는 말은 이때 쓰려고 아껴 놓은 듯했다. 식사가 끝난 뒤 우리들은 서산대사가 수행을 하다가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승병을 일으키셨다는 금강굴까지 올라갔다.

3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하고 보니 겨우 한 두 사람 머물 수 있는 작은 암자가 나타났다. 그곳을 지키는 나이 50쯤 되어 보이는 리영철 안내원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근처에서 딴 개복숭아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도 마침 가지고 간 과자를 주어 같이 나누어 먹으니 동포의 정이 새삼 느껴졌다. 암자 앞에 펼쳐지는 묘향산의 푸르름과 하늘에 둥실 떠오르는 구름을 보았다. 서산대사는 일찍이 ‘백두산은 장엄하되 수려하지 못하고, 금강산은 수려하되 장엄하지 못한데, 묘향산은 장엄하면서 수려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서산대사의 기개와 삶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서산대사의 시 귀절이 생각났다.

눈 내린 들판을 밟을 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을
반드시 뒷사람이 따라 밟을지니.

자기가 잘못하면 남들이 따라할 수 있으니 부디 언행을 조심하라는 말씀이렸다.

이튿날 아침에는 170미터나 되는 주체 사상탑을 보고 정상에 올라 평양 시내를 다 돌아 본 다음 개선문을 구경하고 나서 김정숙 탁아소를 방문했다. 김정숙 탁아소는 우리일행이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이기 때문에 어린이 시설을 보고 싶다고 해서 이루어졌다. 이 곳은 예고없이 갑자기 방문하게 되었기에 공차고 뛰노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땀이 흐르는 아이들의 얼굴이 너무나 천진해서 디지탈 카메라로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더니 갑자기 십 여명의 아이들이 모두 나를 에워싸고 “나도 찍어줘요” 하는 바람에 나는 순식간에 아주 인기있는 사진가가 되고 말았다.

잠시지만 같이 손잡고, 떠들다가 돌아 나오려니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삼삼하게 밟힌다. 디카를 뒤로 돌리면서 아이들 얼굴 하나 하나를 다시 보았다. 천진한 미소와 맑은 눈망울들이었다. 우리가 북한 어린이를 도와야 된다고 97년에 모였을 때가 떠올랐다. 남한에는 이미 사라진 영양결핍증의 증세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기 위해 다시 의학서적과 논문을 읽어보고, 설사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 위해 세계보건기구의 필수의약품 목록을 참고하여 우리의 호주머니를 털어 북에 의약품을 실어 보냈던 것이다. 당시에 이북이 고향이시던 원로 의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손길이 닿을 때까지 북의 어린이들이 살아 있기를 기도합시다. ” 내가 지금까지 이 일에 매달리게 된 데는 그분의 간절한 말씀이 큰 힘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북에 다녀 온 후 친구들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매달 만원씩만 후원해 줘. 국민은행 754201-04-001772 (예금주 어린이의약품...)로 자동이체로 보내주면 내가 안 잡아 먹지. 사무실 전화번호는 02-744-9756번이야. 한달에 만원은 없어도 살잖아. 그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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