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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보낸 콩기름이 아가들을 살렸구나
작성자 편집실 (2003.01.24) 조회 5250











잠이 오지 않는다.
드문드문 켜져있던 강 건너 고층 아파트 군의 불빛도 거의 사라졌고 강 
상류 쪽 멀리 하얗게 보이던 축구 경기장 금속지붕도 피어 오르는 물안개 
속에 묻혀 버렸다.
1999년 9월 7일. 새벽 2시30분.
안개를 허리에 감고 선 강변 고층 아파트와 철교 오른 편에 솟아 있는 높
다란 탑이 시야에 들어올 뿐 사방은 강물 흐르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하다. 어찌 보면 강변이며 아파트며 철교며 - 여의도에서 내
다보는 서울의 밤풍경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여기는 평양이다. 그리고 지
금 나는 대동강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내 나이 낼 모레면 60인데 남녘 사람들 처음 봅네다 하던 어린이 영양관
리소 백청석 소장님의 목소리.
- 정말 반갑습네다. 보내주신 물품 정말 잘 썼습네다.
두 손이 으스러져라 잡고 흔드는 구강병원 과장 리무남 선생, 그 손의 주
름살.
- 우리가 어렵다는 것 잘 아시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아직 우리는 
‘고난의 행군’ 시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양 실조, 15프로(%) 됩니
다. 빨리 회복시켜 성장에 지장이 없게끔 의약품 영양식품 모두 필요 합
네다. ‘먼 길 오신 손님들 평양 방문 어떻습네까?’ 
환하게 웃던 첫인사를 슬그머니 삼키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던 조선의학
협회 장도경 선생.
- 어린이 설사? 단순설사가 많고 고려약으로 대부분 해결했습네다.
한의학 우수성을 은근히 자랑하며 안경테를 올리던 고려 침구과 과장 김
우영 선생

어느 사이에 정이 들었는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북녘 의료인들의 모습과 이름 
하나하나 까지 또렷이 떠오르며, ‘여기는 묘향산 어버이 김일성 수령님
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하며 일일이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구분하며 설명하던 안내원 동무와 ‘단고기와 대동강 숭어탕, 그리고 송
이를 곁들인 남새볶이입니다’ 하던 여성 접대원 동무들의 낭낭한 목소리
까지 귓전에 쟁쟁하다. 내일 아니 바로 오늘 아침 떠나는 데 말이다.

I. 통역이 필요없는 먼나라

-안녕하십네까?
-반갑습네다.
-? (그것 참 신기하네. 생긴 것도 비슷한데 우리 말을 하네?)
북경에서 만난 아세아태평양 위원회 소속 김영철 참사와 리명복씨 - 강한 
어투의 이북 사투리가 주는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서로 맞잡은 손은 따스
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북녘 사람, 아까는 그 손이 따뜻하여 놀랐는데 같
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서로 말이 통한다는 것이 못내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남한, 북한 이라는 용어는 절대 쓰지말고 김정일, 김일성 이라
는 이름도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을걸? 그러니 될 수있으면 남
쪽이니 북쪽이라고 하던지 아니면 서울측 평양측 해야 한다며 말 하나하
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매순간 - 그 현실이 날카로운 칼날이 슬쩍슬쩍 
목젖에 와 닿았다가는 떨어지고 떨어졌다가는 닿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아찔한 느낌은 북경에서 평양 들어가기 직전에 9월 2일 특별기를 기
다리면서 우리의 위치와 입장을 확인했을 때도 무섭게 다가 왔었다.
북쪽에서는 대표단 내부에 누군가 반대자가 있어 북행을 거부하여 오지 
않는 것이니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했었고 남쪽에서는 북쪽에서 
태도가 바뀌어 거부하는 것으로 판단, 그 이유를 캐려고 전화하고 방문하
여 이유를 캐물었다.
우리 일행이 남측과 북측 사이의 50년 간극을, 그 역사의 비극을 현실감
있게 느끼는, 목에 스윽 칼날이 와 닿는 그런 순간이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나중에 돌아와 대표단 일행 모두 뻗어 끙끙대며 몸살을 앓은 이유도 말 
한마디부터 행동거지 하나하나 매순간 긴장 일변도 일 수밖에 없는 의료
인들의 집합체와 접대하고 감시하고 하는 일들에 프로인 북녘 사람들을 
함께 놓고 보면 자명해 질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대국을 해봐라, 그
것도 대등한 경기를 운영하였다면 아마추어는 게임 후에 반 죽었을거라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각설하고 다시 식탁 위에 세팅 되어 있는 주황색 에이프런이며 접시 사이
에특이하게 배치되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술잔들이었다.
한 사람 앞에 4개씩 놓여 있는 잔 - 바로 선주후면 (先酒後麵)의 시작이
었다. 도미솔도 - 노래하듯 키 순서대로 서 있는 잔 하나하나의 용도를 
보면, 큰 잔은 물을 마시는 것으로 ‘금강산 샘물’이라고 쓰여진 생수. 
그 다음 크기의 잔은 ‘룡성맥주’가 들어가는 맥주잔. 그 다음은 포도주
를 담는 잔. 제일 작은 잔은 40도 짜리 들쭉술 마시는 잔. 이렇게 키 별로 
돗수별로 놓여 잔을주고 받는 우리와는 달리 ‘잔 냅시다’ 라는 말에 나
름대로 마시면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잔을 채워주는 이른바 중국식.
이러한 ‘교양’을 미리미리 습득한 곳. 이곳이 예전에는 문간에 얼쩡거
리기만 해도 돌아와 치도곤을 치렀다는 그 유명한 식당 - 북에서 직접 경
영하는 ‘해당화’ 였다. 바로 여기서부터 방북 여정은 시작 되었다.

II. 모든게 낯선 평양의 첫날

평양 순안 비행장에 내리자마자 우리 대표단 일행이 처음 맞닥뜨리게 된 
것은 건물 옥상 한가운데 세워진 커다란김일성 주석의 초상화였고 그 양 
옆에 씌여진 ‘평’자와 ‘양’자 - 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람결
에 살랑거리는 미류나무였다. 그리고 엄청나게 철저한 - 외국 어디에도 
보기 힘든 - 검문, 검색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키색 군용담요를 오려서 만든 듯한 군복의, 그리고 모자는 왜 그리 큰 
지 병정놀이하는 소년같은 모습의 군인이 개인 물품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에- 자기들에게 선물할 물품까지 포장한 줄을 끊어 가며 내용물을 뒤져대
는 것이었다.
‘ 되게 폐쇄적이고 비타협적인 나라로구나.’ 익히 짐작하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음에도 슬슬 속이 뒤집어지려한다. “에이 관둬라. 시작부터” 
시선을 돌리자 문득 백일홍이니 작약이니 봉숭아 - 순수한 우리나라 꽃으
로 장식한 공항의 소박한 화단이 눈에 뜨였다.
우리 식대로 살자. 주체다 뭐다 하더니 이 친구들 정말 작은 것에도 노력
을 기울이는 구나. 잠깐 이건 고무 찬양 아닌가? 보안법이 아직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 데 이거, 혼자 중얼거리며 감탄이나 칭찬을 할까말까하는 
데 안내원이 불쑥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 그저 요식행위라 생각하시고 하시기 싫으면 안하셔도 됩니다.
- 아, 이야기 들었습니다. 가죠. 뭐.
(가죠 뭐. 하고 쉽게 답했지만 얼마나 많은 논란을 했던가. 김일성 동상에 
헌화한다는 사실과 그 꽃을 준비해야하는가에 대해)
- 꽃다발 값이 일곱 달라 되겠습니다.
- ? (즈이들이 원해서 가는 데 바치는 꽃 값을 따로 받는다? 엎드려 절받
기 아냐?)
거대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금빛 동상. 그 앞에 주욱 놓여 시
들어가는 큰 꽃다발 작은 꽃다발…
- 여기서 촬영해도 됩니까?
- 아. 일 없습니다.
- 예? 아 예에.(참 이 말은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괜찮다는 말이라고 코
치를 받았지)

순안 비행장을 거쳐 김일성 동상 앞에 헌화하고 빠른 속도로 평양시내로 
진입하자 대표단들의 시선도 빠르게 움직였다. 벌써 돌아가 보고할 사항
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전차 두 대를 이어 놓은 듯한 궤도열차를 보고 
저게 뭐냐는 둥 요금은 얼마냐는 둥 10전이라면 어느 정도 가치냐는 둥.
- 아이구 대표 선상님들 고만 합시다. 낼도 있고 모레도 있는 데… 첫 술
에 배부르겠습니까. 찬찬히 합시다.잉? 찬찬히.
끝없는 질문에 안내원이 두손을 들었다.

평양역, 보통문, 모란봉구역, 김책공업대학이 무슨 영화장면처럼 휙휙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우리를 태운 벤츠가 멈춘 곳이 47층짜리 양각도 국제
호텔이다.
호텔 접수구로 다가가자 ‘평양 - 모스코바 출발 평양 역 16:30.’ 이라는 
붉은 전광판이 눈에 띄었다. 이어 나타나는 ‘평양 - 마카오 출발 평양역 
19:00’ 전광판 글씨가 뿌옇게 흐려지며 주변의 사람들-운전기사, 안내인, 
접수 - 모두가 보위부나 사회안전성 소속 감시인처럼 느껴졌다.
평양 도착한 첫날의 느낌은 이러했다.


III. 북한 어린이를 살린 콩기름

만경대 고향집 (김일성 생가) 참관에 이어 어린이 영양연구소 참관이 끝
나자 소장,부소장 외 몇몇 관계자들과 - 북쪽 용어로 말하자면 보건의료
일꾼과의 면담 - 회의를 하는 데 역시 실태발표와 ‘교양’을 곁들여 진
행하기 시작했다.
“이것 저희 일꾼들이 만든 건데 좀 드시면서…” 하며 도토리로 만든 도
토리건강음료 (Tothori Drink)와 장수건강식품 도토리 단묵(Tothori Jelly)
을 내놓았다.’도토리 드링크?처음 보는 건데…’ 갸우뚱하다가는 맛있게 
먹는 일행을 보고는 “원래 도토리는 떫은 맛 때문에 먹기가 좋지 않은데
저희 일꾼들이 이를 해결했습네다.”하며 연구소장은 흐뭇한 듯 웃으며 
말을 계속 이어 갔다.
1) 비타민 부족, 미량원소 부족한 실태, 2) 젖 대용품 연구 3) 유병율 높은 
질병 예방 위한 사업, 4) 국제 기구와의 교류가 연구소 하는 일이며 전국
적인 영양감시체계를 갖고 역학조사도 한다는 요지의 설명을. 그리고 나
서 비로소
-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 마음이야 더 많이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어떻게 잘 사용하셨습니까?
아이들 설사와 결핵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묻던 보훈 병원 진료부장 
심재식 상임대표님이 콩기름의 사용처를 묻자 한숨을 쉬며 나오는 답.
- 고난의 행군 시대 어머니들은 젖이 잘 나오질 않고 모자랐습니다. 분유 
같은 것은 더더욱 없고요. 예 아까 보신 연구실에서 우리 일꾼이 활용하
여 젖 대용품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잘썼습네다.
간단하게 말하고 입을 다무는 뒷부분에 약간의 습기가 느껴졌다. 진정 고
마우면 북녘 사람들은 간단히 말하곤 입을 다무는 습관이 있구나.
그것을 남쪽에서는 ‘고맙지? 그치? 고마워 해야지 그럼. 그래야지. 인간
이라면’ 하며 자존심을 긁어야 직성이 풀리고 답이 없으면 건방지다고 
몰아세우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 그랬구나.그랬었구나.그 콩기름이 아가들을, 먹여 살렸구나.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이야기를 듣던 일행들이 일제히 서로 눈을 맞추고 
말았다. 얼마나 사연 많던 콩기름이었던가. 북경에서 최승갑참사를 만나고 
돌아온, 얼마나 싸웠던지 목까지 잠긴 공동대표 임종철 집행위원장님을 
몰아세우면서 얼마나 난상토론을 하고 언성을 높이고 했었던 콩기름이었
던가.
- 우리가 지원하는 것은 의약품이지 일상용품은 아니지 않습니까. 콩기름
이라니요!
- 북쪽사람들은 정말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득한 순간이었다. 북측의 무성의와 몰염치에 분노한 남측 
지원본부 임원 선생님들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집행위원장의 뚝심있는 설득과 북측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참아라 절대 
화를 내서는 안된다는 법타스님이나 문규현 신부님의 말씀을 수용하기 시
작한 우리 내부의 인내가 가닥이 잡히면서 보내게 된 콩기름. 그런 콩기
름이…
영양관리소를 출발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으로 향하면서 어쨋든 아기들을 
살렸다는 뿌듯함과 요구하면서도 절대 수그리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손
을 내미는 북녘 사람의 저 태도가 대체 뭔가 싶어 못내 기분이 쓰고 달고 
시고 하였다.
이렇게 둘째날이 지나갔다.

Ⅳ. 간장, 된장 불소화

“아이들 치아에는 벌레가 많습니다.하여 당은 치아를 보호하기 위해 여
러가지 방법을 고안했었습니다. 그런데 충치 예방하면 불소가 기본 아닙
네까? 불소가 부족하면 아이들 벌레 먹기가 쉽다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사람 하루 세끼에 간장, 된장 아니 먹는 사람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어른은 어른만큼, 아이는 아이만큼 알아서 먹는 양이 조절되니 경제적이
지요.”

경제적이라… 같은 말이라도 우리와 사뭇 다른 의미로 쓰이는구나. 암튼 
북녘의 구강과 선생님들, 주민들의 구강보건을 위해 정말 애 많이 쓰는구
나. 또한 의사들, 약사들 ,고려의사(한의사)들 모든 보건 의료인들이 체제
나 관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말 그대로 인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는구나.
그리고 그런 의무를 행하는 자부심과 당당함이 엿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자본주의하의 의료인과 무엇이 달라 이런 감동이 오는 걸까? 싶어 
새삼스런 눈으로 주방장 모자를 쓴 북녘 의료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물
론 짧은 기간의 방문과 보여주는 것만을 본 아주 단편적이고 부분적이었
지만 말이다.
-선생 병원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개인 의원에서 불소도포를 시행하고 학교에서 불소양치사업을 합
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상수도 불소화를 하고 있습니다.
-상수도 불소화 그거 비용 많이 들텐데요.
‘아닙니다. 저희 건치 자료에 의하면 일인당 200원 정도의 비용으로 그
건…’ 참으로 싸서 경제적입니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지긋이 입
을 다무는데 웃음소리와 함께 내 손을 잡는 분들이 있었다. 
-유선생 지금 수돗물불소화 반대하는 사람들 생각하지? 자 돌아가서 우리 
함께 발표합시다. 북녘에서 조차 충치예방에는 불소가 기본이라고, 상식이
라고…

평양산원과 의학과학원 의학생물 연구소 참관을 마치고 점심을 한 후 거
리를 나서자 평양거리는 아연 축제의 거리가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
다. 세계 여자마라톤을 제패한 정성옥 선수-영웅 칭호에다가 좋은 자동차
가 주어졌고 평양에 최고급 아파트도 주어져 시골의 부모도 올라와 살게 
된-가 귀국하는 날, 우리 일행은 방북후 처음으로 교통체증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예 차에서 내려서 같이 환영하겠다는 우리의 의견도 무시된 채 다시 양
각도 호텔에 내려지게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정 때문
이었겠지만, 북녘의 서민들을 만나게 하지도 않고 이야기하게 놔두지도 
않는 갇힌 느낌 때문에 그 유명한 평양교예단의 서커스관람도 그저 그만 
우울하게 보고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손꼽아 보니 평양 도착한지 불과 사흘밖에 안됐는데 30일은 지난 듯 하
다.

Ⅴ. 묘향산을 둘러보니

-공화국 의료일꾼들과 면담은 월요일날 하시고 오늘은 일요일이니 향산에 
가는 것 어떻습네까?
-…
-일꾼들 보고 나오라면 나오기야 하겠지만 일요일날은 좀 쉬는 것이… 암
튼 대표단 선생님들이 결정하시라요. 우리는 절대 강요 않습네다.
-면담을 하고 단군릉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향산이라니요?
-아 단장선생 모르시겠습네까. 묘향산 말입네다.
-…
-묘향산!
묘향산으로 가기 위해 평양을 떠나 순안비행장을 거쳐 북으로 가는 길에 
지형은 남이나 북이나 비슷하여 어슷어슷한(非山非野)가 계속 이어져 경
부 고속도로추풍령 어드메쯤 달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산이 날카로와지면
서 강이 나타났다.
-저 강이 혹시.
-예 청천강입네다. 저 다리는 금성다리구요.
역사책에서는 살수라고 불리우던 청천강이 구비구비 굽이치는 모양을 보
고 있노라니 영월 동강(東江)과 비슷한 주위 모습에 놀라는 한편, ‘남이
나 북이나 자연은 똑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젖어든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국제친선 전람관을 보자고 해 들어가니 우리와는 
다뭇 다른 외국어 표기 덕분에 한글이 외국어보다도 더 낯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고의 티토를 ‘찌또’라 하질 않나, ‘루마니아’’불가리
아’를 ‘로무니아’ ‘벌가리아’라고 하며 ‘캄보디아’을 ‘캄보쟈’
라 읽었다. 그리고 ‘튀니지’ ‘토고’ ‘콩고’를 ‘뚜니지’ ‘또고’ 
‘꽁고’라 하여 온몸이 스물거리는 느낌과 함께 거부감까지 들었다.
‘현대’ ‘대우’ 등 남녘의 재벌들이 ‘장군님’께 보냇다는 호화 가구
며 다이너스티 승용차며 선물을 보자 문득 아픔같은 것이 스며들었다. 그 
‘아픔같은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골돌히 생각하고 있노라니 ‘묘향산 
칠색송어회’ 곁들인 향산호텔에서의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자아 여기가 서산대사님이 거쳐하셨던 곳입네다! 둘러보시고 목마르신 
분은 바위 뒤에 샘터가 있으니…
아 그렇다면 여기가 호옥 묘약산 원적암이란 말인가? 반가움과 놀라움에 
얼른 뛰어들어가 영정을 향해 인사를 드린 후 잠시 눈을 감고 ‘민족’’
평화’’통일’을 생각해 보았다.
오를 때는 어떤 ‘아픔’ 같은 것이 저며들더니 지금은 갑작스레 목이 타
는 듯한 갈증이 일어나 다시금 합장을 한 후 암자 밖으로 나와 유홍준 교
수님이 ‘아’하고 놀랐다는 아스라한전망도 보면서 음식을 나눠먹으려 
따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평양에 도착하니 많이 늦었다.
이렇게 평양 체류 나흘째가 지나갔다.

Ⅵ . 어린이는 남이나 북이나 다 예쁩디다

유치원과 탁아소를 방문하고 같이 춤추고 안아보고 문득 튀어나온 우리 
대표단 일행의 말이다. 물론 평양 하고도 그 유명한 김정숙 탁아소와 창
광 유치원만을 보고 북녘 전체 어린이들에 관해 뭔가 표현한다면 넌센스
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똑같이 남이나 북이나 할 것없이 귀엽고 초롱초롱
한‘우리’들의 미래라는 것.그것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큰 수확이 아
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북녘에 있다는 것, 그것도 한 두사람이 아
니라는 것, 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을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 숨은 
일꾼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발견 한 것도 큰 수확이 아니겠는가 ?
그런 반면 말도 안통하는 사람도 많고 문화가 완전히 달라져 50년 분단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고 왔다는 것 -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확 중의 
하나이다.

-유치원 교육은 2년인데 만 4살까지 공부하는 낮은 반은 교양을 가르치고 
만 6살까지 있는 높은 반은 학령전 의무교육을 시킨다 이 말입니다.
교양은 만경대 고향집을 모형으로 만든 것을 중심으로 학습을 시키고.
그리고 우리 유치원은 주 유치원이니까 월요일이면 아이들이 들어오고 토
요일이면 부모들이 데리고 가고 그럽니다.

-산토끼 토끼야 오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맘마 먹으로 가지요.

서울에서 ‘남북의 창’ 같은 프로그램에서 자주 상영되어 스물스물하게 
만드는 목소리와 얼굴 - 입도 ‘빵끗’ 웃는 모양으로 잡아 당겨 만들고 
눈도 ‘쌩클’ 치켜 올리며 높은 가성으로 외치는 - 이 결국 리틀 엔젤스
나 국악 고등학교 아이들의 무대 매너와 다름이 하나도 없고 가성이 아닌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주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것
을 배우게 된 참관이었다.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원래로 돌아온 순수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쟤들은 맨날 입만 열면 그 타령이야.’하는 오해나 선입관이 사라지고 
오히려 저 어린것들이 공연을 한답시고 사회성을 배우는 것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남녘 아기들이 엄마 품에 안겨 칭얼거리고 엄마는 그 의존성과 
이기성을 조장한다는 내 생각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전 중에 중구역의 창강 유치원 참관하고 오후에 모란봉 구역의 김정숙 
탁아소 참관, 그리고 보건 의료일꾼과 아세아태평양 평화 위원회 사람들
과의 실무 면담이 이어졌다.

Ⅶ . 고난의 행군 그리고 답답한 우리들

- 저희 공화국은 1947년 이래 60년까지 완전한 무상치료제가 확립되어 국
가가 통일적으로 인민을 돌봅니다. 어버이 김일성 수령께서는 의사 담당 
교육제라 하여 의사 한 사람이 134세대를 맡아 치료하는, 책임성을 중요
시 여기는 제도를 확립하였고 이를 이어 경애하시는 장군님께서는 강화 
발전시키는 가르침을 주셔서 모든 질병을 조기 발견, 감기조차 초기에 치
료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대강 알고 있는 의료 전달체계를 비롯해 다시 설명해줘서 고맙습니다. 
저희들이 제안한 내용에 대하여 먼저 어린이의 상태에 관해…
-우리가 어렵다는 것 잘 아시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아직 우리는 ‘고
난의 행군’ 시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양 실조, 15 프로(%) 됩니다. 
빨리 회복시켜 성장에 지장이 없게끔 의약품 영양식품 모두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희 제약시설 능력 있습니다. 경험도 있구요. 자금의 효과성을 높
이기 위해 원료를 보내주시면…
-예 다음은 남북 의약용어 통일사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는 같이 
살아야 할 민족이기에…
-정말 비극이 아닙니까? 까놓고 말해 서울에서 출판되는 의학서적 한자어
와 외래어가 많아서 우리는 전혀 못알아 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말로 되
어 있습니다… 앞으로 전망적인 문제로 봅시다. 우리가 꼭 해야하고 할 
수가 있는 일이지만 공동학술대회를 포함한 이 문제 저희들이 통보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간 아태를 통해 보냈던 수많은 자료들, 그 노력들
이 허무하게 느껴지며 화가날 지경에 이르러 핏대가 날대로 난 우리 대표
단 일행은 의료인들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바로 아태 사람들과 동석식사
(첫날 도착했을 때는 북녘이 초청을 했고 이제 우리가 주인이 되어 식사
대접하는 관례가 있었다)로 숨가쁘게 이어지는 일정 속에 넥타이를 풀어
젖히고 앉았다.
협상은 순조롭지 못해 결국 대동강변에 띄워 놓은 유람선 상에는 남쪽에
서 가져간 안동소주며 문배주가 뚜껑도 따지 않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
었다. 초대의 의미가 무색하게 남측의 상임 대표와 집행위원장은 밖에서 
언성을 높이며 입장 하지 않았고, 북측의 참사와 안내 지도원은 열심히 
무엇인가 설명하고 있었다.

-그동안 문건을 만들어 보냄은 물론이거니와 북경 도착해서도 김영철 참
사에게 합의서 초안을 보여주었고, 평양 도착하자마자 량건모 참사에게 
문건을 보냈는데 조선의학협회에서는 통보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니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아 단장선생, 그리고 림선생 입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선생들이 어떤 분
인지 남쪽의 실태가 어떤지 우리 충분히 압니다. 선생들의 진심 다 알기
에 우리도 적극 협력을 하겠다. 이 말 아니겠음? 실무적 사업인 이상 다 
도와드리겠지만 선생님들 입장과 남쪽 가서 활동하는 데 지장을 드릴까봐 
노심 초사하는 우리 보이지 않슴네까?
-관둡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얼마나 힘들었는지 북측에서 
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장사꾼 같으면 ‘우리 못해!’ 하고 집어 
치우겠지만 우리는… 
그리고… 아아 관둡시다.
-해봅시다. 회담에 가시덤불 있어도 조급해하지마시고 지금 참사님이 다
시금 들어가 상의를 하신다니 자자 음식 식습니다. 가는 길 험해도 웃으
며 갑시다. 잉? 자 
잔 냅시다.

Ⅷ .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그래 자강도 어느 공장벽에 씌여 있었던 이 표어가 ‘고난의 행군’을 얼
마나 버겁게 넘었는 지 반증을 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금 서로 인내하고 
조율해보자. 휴우 정말 힘드는구나. 50년의 간극 속에서 쌓인 오해와 선입
견,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편견 그리고 우리가 첩자인지 아닌지 진짜 
순수의료인인지 분석도 해야겠지.
우리 역시 단순 안내인이 아닌 보위부에서 파견된 이 지도원 동무들을 계
속 의심해야 할 것인지 믿고 진행시킬 수가 있는 것인지 따져 봐야겠지. 
의료인들 간의 교류의 폭을 넓히고 상호 이해의 폭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중요성을 강조를 해놓고, 그 당위를 실천하기가 입 한 번 달싹거리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머리 속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진다.
-량참사님의 노력, 리선생 최선생의 노력도 우리 다 인정합니다. 아태 한 
부서만의 결정으로 되는 일 아니라는 거 우리 잘 압니다. 우리도 마찬가
지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불신을 하면 그러다가 어느 한 쪽에
서 이 끈을 놓으면 비타협적 비통일적이 된다면 통일 반대주의자가 되고 
만다면(맙소사). 북측에 속도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말 맞는 말입니다. 
지금 시대는 생각의 속도라는 말이 있고 그 속도가 생존을 좌우한다고 하
는 21세기가 코 앞에 기다리고 있는 때입니다. 혹자는 100년 전 개항 시
기와 같다고들 합니다.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 지금 안되면 그만큼 
늦어지고 늦어지는 만큼 또 냉담해진다면 이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을 이루기 위해 여러 상황을 설명해보지만 내일 평양을 떠나야하기에 
점점 다급해지는 우리의 마음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일 힘들고 힘든 만큼 긍지도 있는 거 아닙네까. 하루아침에 되는 
일 아니라는 거 우리 서로 잘 알지 않습네까.
-내일 아침 공항에서 봅시다.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설득하여 올터이니… 
량참사가 호기있게 술을 죽 들이키더니 퇴장했다.
이렇게 해서 저녁식사 초대는 마무리되고 우리는 벼랑의 끝에 서게 되었
다. 약 일주일간의 시간 중 떠나기 전날에서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중간 교량자인 아태의 실수(?)로 우리측의 제안을 북측이 검토할 시
간도 없이 만나게 되니 이번 방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지, 왜 그토록 노
력했었는지 등등의 생각들이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아슬아슬하게 보류가 된 문건과 노트북, 프린터를 주섬주섬 챙기는 공동
대표들과 팔장을 끼며 창밖 대동강으로 시선을 던지는 상임대표, 그리고 
눈가가 벌겋게 되어 참사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집행위원장의 모습이 이젠 
우리의 화두가 되어버린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붉은 글
씨와 오버랩되며 평양 방문의 막이 내렸다.

Ⅸ .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온 것일까

돌아 오자마자 여기저기 살아서 돌아왔다고 전화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북
녘 다녀온 보고대회를 하는 바쁜 와중에 문득 느낀 감정들.
그 하나는 고마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슬픔이랄까.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들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관대 이런 귀한 기회를 주어 그 금단의 땅을 다녀오
게 하였는지 지원본부 임원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 고문, 지도위원님들
께 진정 감사드리고 싶다.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이란 뭐랄까 여전히 서울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살아가는 남녘 사람들은 이제 북녘 어린이들을 거의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2년전 꽃제비와 탈북자, 영양실
조가 인종의 차이가 날 정도라는 문제점에 관한 그 엄청난 관심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터키를 돕자는 구호가 난무하더니 대만을 돕자 동티모
르를 돕자 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 입에서도‘응 평양 다녀 왔대
며? 수고 많았네. 북쪽 걔들 어때? 그 ××들 여전하지?’ 하는 자신의 
오해와 편견을 우리를 통해 더 강화시키려 하는 몸짓 때문에 당황스러웠
다.
하여 자꾸만 반문하게 된다.
-통일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우리는 진정 통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평양을 떠나는 날. 9월 7일 아침.
들어올 때와는 달리 외국인도 많고 공항은 몹시 붐볐다.
-이것이 저희들로서는 최선입니다. 료해하시고 싸인하셨으면 합니다.
북측 인사들의 목소리에 섞여 “어제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수표할 수 없습니다.” 하는 심재식 상임대표의 음성이 귓속을 울린다.
갑자기 사물의 모습들이 빙빙 돌면서 ‘제기랄’한마디 외치며 눈물을 털
어 버리고 발길질 하듯공항을 튀어 나가는 집행위원장의 모습이,‘잠깐, 
잠깐만’하며 손을 잡으려는 아태의 량참사의 벌겋게 달아오른 눈가가, 
시간에 쫓겨 게이트를 나가면서’ 북경에서 아태의 팩스를 기다리겠습니
다.’끝까지 포기 않고 한마디 짚는 유기덕 공동대표의 외침 -이런 여러 
것들이 영화처럼 뒤섞이며 평양 순안 공항 한가운데 다시 서있는 우리의 
모습이 처음 도착할 때와는 달리 허탈하게 보였다.
곧 출발한다고 등 떠밀면서도 웃음을 잃지않는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 남
남 북녀의 그 예쁜 미소 도 아물아물 보이지 않고 그저 ‘하루만 더 일찍 
논의를 시작했어도 여유있게 했을텐데.
일정 뻔히 알면서 우리는 왜 이토록 시간을 끌고, 서로를 믿으려 하면서
도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걸까?’ 하는 뭐랄까.반성? 아쉬움? 안타까
움? 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기약없는 이별.
날씨는 좋았다.
고려항공 여객기 창 밖으로 북녘의 산하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였다.
-유선생 아프다면서 괜찮습니까?
-에이 감정적인 건데요 뭐. 리순영이가 리인모씨 이야기 할 때부터 말예
요.
뭐 하나가 내려가지 않아 체한 것처럼 더부룩 해서요.
-누구요? 이인모노인? 아 그 전향을 거부하던, 그러다가 북으로 송환된?
-네.
- 그래요 아직도 보안법이…

잠깐의 침묵이 영원같았다.

-저런.
-왜요?
-평양을 떠나니 정말 나무가 없구나. 저것 좀 봐라. 저 깎인 모양과 붉은 
산을…
-그렇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온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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