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기자 subbu@minjog21.com

남북교류가 의학분야에까지 이르렀다.
대한의사협회는 얼마 전 열렸던 제5차 평양의학과학토론회 참가를
계기로 “의학 협력으로 통일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며 포부
를 밝혔다.
평양 의학 토론회에 참가한 김세곤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을 만났
다.

해를 거듭할수록 남북을 넘나드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의학 분야의 교류. 그동안 의학 분야 교류는
의약품 지원 및 의약설비 지원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지난 10월 대
한의사협회(이하 의사협회)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평양의학과
학토론회에 남측 의료 관계자가 참석, 북측 의료인 수백 명과 함께
한 것이다.

10월 14∼18일 대동강외교단회관에서 열린 의학토론회에 참석한 이
들은 신상진 전 대한의사협회장을 단장으로 한 24명의 남측 의료인
들. 의사협회 관계자들은 “비록 공식명칭은 ‘제5차 국내외 동포들
의 평양의학과학토론회’지만 실질적인 남북공동토론회”라고 그 의
미를 평가한다.

본래 올 봄에 대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사스(SARS)로 인해 연기되었
다가 다시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일동포 참석자가 3명으로 줄어들었
기 때문에 남북 행사나 다름없었다는 얘기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세곤(59) 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토론회의
성과를 이어 통일의학이라는 풍성한 열매가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
다. 그는 다음주 시력교정술 지원 차 다시 방북할 예정이다. 김 부
회장을 만나 토론회의 의미와 향후 계획 등을 짚어보았다.


북측이 먼저 제의한 분과별 자유토론

-이번 토론회의 의의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토론회는 의사협회가 2001년 9월 백내장 수술을 시작으로 의료협
력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얻어낸 결실입니다. 남북 간의 여러
학술분야 교류 중 의학분야에서 개최된 최초의 학술대회였으며 여
러 측면에서 유익하고 성공적이었습니다. 제5차 평양의학과학토론회
는 남북의료사에 길이 남을 커다란 사업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북측 관계자들의 환대를 받았습니
다. 토론회에서도 북측 의학자의 발표 시간은 15분으로 하면서도 남
측에 20∼60분씩 시간을 배려했고, 오후 4시 이후부터는 북측 의학
자의 발표를 생략하면서까지 각과별로 남북의 의학자가 자유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주제발표에서는 주로 어떤 관심사가 논의되었습니까?

“총 16개의 논문이 준비되었는데, 남측 발표논문은 〈폐결핵의 첫
치료〉 〈가정 의사를 위한 임상지도서 개발〉 〈바이러스 질환의
진단〉 〈간암의 진단〉 〈첨단 내시경 현황〉 등 5개였습니다. 북
측에서 많이 유행하는 질병으로 알려진 폐결핵을 다루었고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을 주제로 선정해서 최신 진단 및 치료법 등을 알리고
자 했습니다. 남북 모두 주제발표 후에 활발한 질문을 주고받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더군요.”

-분과별 모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습니까?

“우리는 북측의 의학교육, 의료제도,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에 대
해 질문했습니다. 북측 의료인들은 진지했으며 새로운 지식, 기술,
의료 기기 등을 갈망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남측 의사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대해서도 궁금해했습니다.”

- 분과별 토론은 그간의 남북토론회 역사상 처음 시도된 것 같은데
요.

“사실 분과별 모임은 사전에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점심식
사 후에 북측 의학협회 고위 책임자가 자유토론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떠냐고 의향을 물어왔고, 우리측이 찬성해 분과별 모임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이러한 파격은 그동안 서로가 쌓아온 신뢰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사실 모르는 사람끼리, 더구나 적대관계에 있던 사람끼
리 신뢰를 쌓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뢰란 한번 쌓이면 오래
지속되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신뢰를 쌓아왔고,
앞으로 그를 바탕으로 일을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내년 5월, 6차 평양의학과학토론회 열기로

- 북의 의료현실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경제난이 심각했던 만큼 의료현실도 어렵습니다. 기초의약품인 항
생제, 결핵약, 구충제, 수액제 등이 부족합니다. 의료장비도 마찬가
지입니다. 2001년 수술 당시 평양의학대학병원 안과 수술실에 소독
기가 1대 밖에 없어 3일 동안 대기환자 30여 명 중 겨우 8명만 해주
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산모와 신생아, 특히 쌍둥이와 세 쌍둥이를
중시하는 의료정책이 1980년대에 건립된 평양산원에 그대로 구현되
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2001년부터 남북의학교류를 담당하고 계신데요. 어려움도 많으셨
을 것 같습니다.

“가장 장애가 되었던 것은 너무나도 달라진 의학용어였습니다. 일
상 용어의 경우 약 20% 정도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던
데 의학 분야도 다르지 않습니다. 백신을 ‘왁찐’이라 하고 근거중
심의학을 ‘증거의학’이라 하는 등 50% 이상이 이해하기 어렵게 바
뀌었습니다. 이런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한 남북 공동의 노력이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선의학협회가 예정된 행사를 양해도 얻
지 않고 변경, 취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극복돼야 할 태도
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도 앞으로 신뢰가 쌓이면 풀리겠지
요.”

-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향후 남북이 함께 논의하기로 한 것은 어
떤 것들입니까?

“평양의학과학토론회가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제6차 토론회는 2004년 5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
하기로 했습니다. 기생충을 포함한 전염병, 내과·외과·특수과 일
부가 함께 하는 비전염병, 소아과 및 산부인과 등 분과별 심화토론
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향후 서로 다른 의학용어에 대한 심화토론
도 하기로 했습니다.”

- 의사협회의 역할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의료협력사업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입니다. 가는 길에 비도 오
고 눈도 오고 또 돌부리에 채여 비틀거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협력을 도모해 훗날 있을 통일을 앞당기는 역할을 하고자 합
니다.”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흰 가운의 남북 의사들이 뭉치기 시작했
다.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삶은 남쪽 의사건 북쪽 의
사건 같을 것이다. 게다가 남북 의료교류는 비정치적인 분야로서 쉽
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임에 틀림없다.[200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