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통일한국 2003년 3월호

<김보근/ 한겨레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평양의 대표적 산부인과 병원인 평양산원에서 일하는 윤지혜씨는
김정일 위원장의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윤지혜씨는 <노동신문
> 2월 4일치 ‘녀성들을 위한 참된 의료봉사자로’에서 그 배려들
을 이렇게 표현한다. “평양산원에 현대적인 치료설비들을 아낌없
이 들여다 놓도록 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세월이 흐를수록
높은 속도로 발전하는 현대화의 수준에 맞게 평양산원의 의료설비
들을 귀중한 자금을 들여 세계 최상급으로 갱신하도록 크나큰 은정
을 돌려 주셨다. ”남쪽과 달리 무상치료제를 시행하고 있는 북한
에서 의료설비에 대한 투자와 의료인의 봉사자세 역설은 어쩌면 당
연한 일일지 모른다. 실지로 최근 북한 매체들은 컴퓨터화를 통해
의료체제를 현대화하고 있는 병원들의 모습을 자주 전한다.
지난 1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은 컴퓨터를 이용해 큰 성과를 낸 북
한 고려의학종합병원 이야기를 소개했다. 평양 문수거리에 자리잡
고 있는 이 병원에서는 “컴퓨터에 의해 진단과 치료를 겸할 수 있
는 고려의술(한방 치료기술)을 개발”했다. 고려의학종합병원 침구
연구소의 김경희 연구사가 개발한 이 치료기술은 “같은 병이라도
환자들의 체질에 따라서 진단과 치료를 서로 다르게 개별화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이 치료기술은 최근 몇 년 동안 “정신분
열증 환자 등 많은 난치성 질병 환자들을 완치시켰다”고 한다.
이 병원은 고려의학(한의학) 침구연구소ㆍ체질연구소를 비롯해 52
개의 외래치료과가 운영되는 내과와 외과전문병원을 갖춘 북한 최
대규모의 한의학 연구 및 치료센터이다.
그러나 모든 병원에서 이렇게 많은 투자와 현대화 작업이 이루어지
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오히려 북한의 중소규모 병원은 투자
는커녕 중앙으로부터 약품공급마저 끊긴 상태다. 그래서 북한 언론
들은 현대화와 함께 ‘자력갱생’의 원칙을 강조하기도 한다.
북한에서 약품이 얼마나 귀한 물품인지는 지난해 12월 6일 <노동신
문>의 ‘뜨거운 인간애를 발휘하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
는 김만유 병원 구급소생과 의료일꾼들의 인민사랑 정신을 소개하
는 것이다. 김만유 구급소생과에 한 노동자가 실려왔다. 의료일꾼
들은 즉각 이 노동자를 살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 “코
를 통해 넣는 약만도 열 가지가 넘었다. 값비싼 약들과 액체, 여
러 리터의 피가 평범한 한 로동자의 소생을 위해 환자의 몸으로 수
없이 흘러들었다.” 여기서 북한에서 약품이 상당히 귀중하다는 사
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귀한 약재는 자체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노동신문> 기자가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종
합진료소를 방문한 내용을 담은 1월 31일치 ‘로동자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집’에서 진료소 당세포 김명옥 동무가 한 자랑은 빈말
이 아니다. 김명옥씨는 “우리 진료소에는 못 만드는 약이 없다”
고 강조한다. 그가 이끄는 데로 제약기지로 가보자. 이곳에서는 골
수염 치료에 특효가 있는 주사약을 비롯하여 각종 항생제들과 고려
약들을 55종이나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의료일군들은 또 약
제조에 필요한 고압가마며 알약찍는 기계, 고압산소기 등 치료 설
비들도 자체로 만들어 쓰고 있었다.
<노동신문> 1월 20일 ‘화선군의의 심정으로’에서 소개된 대안구
역 의약품관리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관리소에서는 국가에서 공
급받는 의약품 외에도 자체로 꾸린 신약·고려약제제실에서 여러
가지 효능 높은 약을 생산하여 치료예방기관들에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원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관리소는 “필요되는 원료를
자체의 힘으로 조성한 약초기지에서 해결”한다. 물론 다른 시·군
들과 유무상통하여 이 고장에 없는 원료를 구색에 맞게 보장하기
도 한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의 개천시 룡운탄광진료소 소개 글은 자체
원료기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의료일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곳 의료일꾼들은 중앙의 의약품 공급이 끊기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떨쳐나 진료소 뜨락에는 물론 탄광 주변의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빈땅을 찾아 약초밭을 일구었다.” 이들이 심은 것은 단너삼
·도라지 등 종류도 갖가지다. 설비도 물론 자체조달이다. “탄광
일군들과 탄부들의 방조 속에 진료소에 가루 는 기계, 멸균기 등
고려약 생산설비들도 그하게 갖추어놓았다.”


“전력난으로 환자 수술도 어려웠다”


이렇게 중앙의 약품 공급이 잘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전력난까지 북
한의 의료시스템의 정상화를 방해하고 있다. 1월 31일 <조선신보>
에 실린 평양시 상원군에서는 상원군인민위원회 려재인 부위원장
의 말은 전력난이 많은 목숨을 앗아갔을 것임을 보여준다. 리재인
부위원장은 “90년대 후반에는 나라에서 전기를 제대로 받지 못했
다”며 전력난으로 병원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고 밝힌다. “병
원에서는 환자들을 시 중심부의 병원까지 후송하여 수술하지 않으
면 안 되였다”는 것이다.
전력난은 치료용으로나 쓰일 온천물을 공업용으로 돌리게 만든다.
1월 7일 <조선중앙통신>은 황해남도 옹진군 옹진읍에 있는 옹진온
천을 소개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온천에서는 하루 1천
5백여㎥의 물이 나오며 물 온도는 1백도다. 이 온천은 피부질환과
위염, 관절염 등에 효과가 크지만 최근에는 공장, 기업소, 협동농
장들에서 동력과 난방, 온실 등에 널리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