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국 (2001년 05월 01일) 탈북자 대담

'통신'교육으로 '준의사' 될 수 있어 - 전 청진의학대학 임상학부
출신 의사 <임운향> (2001년 05월 01일)


임운향 (전 청진의학대학 임상학부 출신 의사)

<대담 - 장인숙/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북한에서 의사가 되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하나.

북한에서는 각 도별로 설립되어 있는 의학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의사가 된다. 남한에서와 같이 전문의 자격시험을 따로 봐야하는
것이 아니라 의대를 졸업하는 것이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다. 이와 같이 졸업과 동시에 의사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의학대
학 4학년 과정부터는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면서 강좌
를 듣는 학습을 병행하여 병원에서의 현장감을 익힌다. 환자를 직
접 진료하면서 실무적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환자를
돌보는데 무리가 없다.
현재 북한의 의학대학은 7년 과정인데 예과 1년, 본과 6년으로 되
어있다. 북한은 남한에는 없는 준의사제도가 있다. 준의사의 경우
4년제 고등의학전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물론 준의사도 7년
제 의학대학에 편입하여 의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의학대학을 졸업한 후 진로는 어떻게 선택하는가.

의학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간부과의 보건과로 가서 의사를 필요로
하는 병원 배치를 받는다. 의학대학을 졸업한 경우 의료직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배치되지는 않는다. 각 병원에 배치 된 후 보건장
과 면담을 하여 그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의 의사로 일하게 된
다. 위생학부 졸업생은 방역과로만 진출하게 되어, 식당의 위생상
태 관리와 방역의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데 의대생들에게 별로 인기
가 없다. 반면에 임상학부는 내과, 외과, 안과, 산부인과 등 그 선
택의 폭이 넓어 의대생들이 선호한다.
나는 의학대학을 병원에 근무하면서 통신으로 졸업했다. 통신으로
공부하게 되면 40일씩 1년에 두 번 대학에 가서 개괄강의를 받고,
과제를 제출한다. 또한 학습한 내용에 대해 시험을 보고, 실습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마치게 되면 주간 의대 출신과 동등한 대우
를 받게 된다. 통신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경우 매일 공부를 하
는 주간대학생들보다 이론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
지만 병원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실무적인 면에서는 오
히려 뛰어나다.

◆임상학부에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가.

임상학부에서는 동의학과 약학, 치과를 제외한 내과, 외과, 이비인
후과, 산부인과, 안과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여 배우고 있다. 이렇
게 다양한 분야를 두루 배우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임상학부 졸업생
을 가장 선호한다. 이는 임상학부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특정분야만
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전 분야를 공부하기 때문에 각 병원에서 필
요한 분야에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단위
의 병원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작은 질병으로 진료를 받으러 오
기 때문에 특별한 전문의사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그냥 한 의사
가 모든 진료를 다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모든 환자를 볼 수
있는 임상학부 학생들이 환영받는다.

◆임상학부가 모든 분야를 포괄적으로 공부하게 되면, 의사의 전문
성 부족이 발생할 것 같은데 별다른 문제점은 없는가.

전문적으로 한 가지만 진료하는 의사들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작은 단위의 병원은 심각한 질병에 대
한 진료나 치료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수술을 해야 하는 중환
자들은 도급 병원과 같이 큰 병원으로 보내기 때문에 특별히 한 분
야의 전문성을 지닌 의사보다는 임상학부처럼 모두를 볼 수 있는
의사가 적격이다. 직접 환자들을 진료할 당시에도 특별히 전문의
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상황은 별로 없었다. 진단에 대해 확
신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경험이 많은 의사들과 함께 협의를 통
해 진료하고 처방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작은 병원
에서 치료할 수 없는 중병 환자들이 옮겨지게 되는 큰 병원은 의사
들의 업무가 좀더 세분화, 전문화되어 있다.

◆의학대학에 가게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

1982년 친척이 정치사상범으로 처벌받게 되어 평양에서 청진으로
추방당하게 되자 사회적으로 많은 제제를 받았다. 그러던 중에 광
폭정치가 실시되면서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들도 대학에 갈 수 있
게 되었다. 하지만 엘리트양성코스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대학이
나, 교원양성을 위한 사범대학은 갈 수 없었다. 기술대학이나 의대
의 경우는 성분에 관계없이 머리만 좋으면 갈 수 있었다. 나도 추
방당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대학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평양
의대에 지망하려고 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뒤늦게 통신으로 공부
하게 되었다. 주간대생들의 경우 여자일 경우 결혼을 하게 되면 대
학을 다닐 수 없으나 통신으로 공부할 경우 계속 공부를 할 수 있
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는 어떠한가.

북한에서 의사직은 인텔리 계층에 속하고 대우도 좋기 때문에 사회
적 지위는 높은 편이다. 특히 경제난이 발생하기 이전 배급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때는 인민들이 병이 나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해야 배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의사들
에 대한 신망이 높았다. 남한에서 북한의 의사 지위가 낮고 그래
서 여성의 진출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여성 의사가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분야와 비교하여 의사직에 여성이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며,
그로 인해 의사직의 지위가 낮다고 할 수 없다.

◆진료체계와 진료대상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달라.

북한에서는 4~6세대를 묶어 호를 형성하는데 의사들은 이 호를
40~50개를 묶어 담당관리하는 호담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통 3백
~4백명 정도를 진료대상으로 한다. 한 진료단위를 담당하는 의사
체계는 과장 의사 1명에 의사와 준의 4~5명과 간호원 1명이 한팀
을 이루어 진료를 담당한다.

◆의사와 준의사는 담당하는 업무의 영역이 구별되어 있는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의사와 준의사의 차이가 없다. 의사는 7년제
대학을 마쳤고, 준의는 4년제 대학을 마쳤다는 것 외에는 하는 일
에 전혀 차이가 없다. 또한 실력에 있어서도 졸업한지 얼마 안되
는 의사보다 준의사가 훨씬 우수한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학력 차이에 의해 대우에 있어서 많은 차별을 받곤 한다. 준의
사는 의사에 비해 진료와 처방에 있어서 제한을 받기도 한다. 따라
서 의사와 준의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 많은 준의사들
이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여 의대에 편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한
다고 해서 의대에 편입할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부족
한 실정이다.

◆경제난이 심화되었을 당시 특별히 많이 발생한 질병은 무엇인가.

몇 년 째 거듭되던 자연재해와 식량난이 96년에 이르러 최악의 상
황에 도달하였는데 이때 북한 전역에 콜레라가 퍼졌다. 북한 당국
은 전염병 예방에 있어서 최고라고 자랑하였는데 콜레라와 같은 전
염병이 북한 전역에 퍼지자 당황하였으며, 콜레라균이 중국으로부
터 들어왔다고 선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콜레라 환자들이 갑작스
레 증가하자 의사들과 병실이 부족하여 천막을 치고 이들을 돌보아
야 했다. 콜레라의 전염성에 대해 별로 상식이 없던 북한주민들은
환자의 배설물이 묻은 옷을 강가에서 세탁했으며, 많은 주민들이
전력 부족으로 인해 양수시설이 작동을 멈추면서 강물을 떠다 식수
로 이용하기도 하여 콜레라가 북한 전역에 빠르게 번졌다. 전염병
이 전 주민에게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은 군인들을 동원
해 강가를 지키게 하여 주민들의 접근을 통제했다.

◆사회주의 국가여서 무상진료였을 텐데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진료를 받을 수 있는가.

원칙적으로는 무상진료가 시행되고 있어 아픈 사람은 누구나 자유
롭게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치료비와 수술비는 물론 입원
비, 요양비, 분만비 등 각종 의료비용 전체를 개인이 부담하지 않
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북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던
때에는 그런대로 좋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병이 나서 병원에 가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는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의
료계 상황도 악화되어 의약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
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진료를 한 후 처방만을 해준다. 그러면 환
자가 알아서 약을 구해야 하는데 대부분 장마당과 같은 암시장을
통해서 비싼 값을 치르고 약을 구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수술을 필요로 하는 중증 환자이다. 이 경우 수
술할 때 사용하는 마취제까지 환자가 구해와야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환자가족들은 수술하는 의사들의 식사까지 마련해
와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